▲ 김명득<br /><br />편집부국장
▲ 김명득 편집부국장

“정말이지,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운영하자니 속만 상하고….”

포항철강공단에서 조그만 기업체를 운영하는 J(58) 사장은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당장 내년부터 최저임금이 16.4% 오른 시급 7천530원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상률이야 이미 결정된 것이어서 돌이킬 수 없지만 연봉 4천만원 이상의 고임금 근로자도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상여금 등을 산입 범위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제도 개선이 필수적인데,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찮아 이마저도 순탄치 않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 해를 넘길 공산이 커졌다.

그렇다고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 생각다 못한 J 사장은 묘안을 짜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밖으로 나가 있는 상여금을 쪼개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현행 최저임금 산입 범위는 `매월 1회 이상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 또는 수당`으로 규정돼 있다. 이 규정을 고칠 수 없다면 3~4개월 꼴로 한 번씩 지급하는 상여금을 쪼개 매달 지급하는 방식으로 규정에 짜 맞추는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의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임금체계를 정비하는 경영수법이었다. 노동계가 지적하는 일종의`꼼수`이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J 사장의 생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의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인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개선하지 않으면 당장 내년부터 전 산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며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상여금은 물론이고 숙식비까지 포함해 최저임금을 산출한다. 하지만 한국은 기본급과 고정수당만 포함할 뿐 상여금, 비고정 수당은 제외시키고 있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포함해 연봉 4천만원이 넘는 대기업 직원도 최저임금 대상자로 분류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저임금 근로자의 최저생계 보장을 위해 마련한 제도가 오히려 대기업 고임근로자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최저임금 제도의 기본 취지에도 맞지 않고 영세 중기 경영자들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제도라는 것이다.

J 사장의 또 다른 고민은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린다는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적어도 2년 동안은 올해와 같은 수준(16.4%)으로 계속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하는 부담이다. 평균 인상률을 초과한 9% 포인트에 상응하는 12만원과 노무비용 등 추가 부담액(1만원)을 합한 금액을 정부가 지원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당초 정부는 “보조금 지원은 한시적”이라고 했다가 “내년에 시행해 보고 계속 지원 여부를 다시 결정하겠다”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계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경총 등이 주장하는 4천만원 최저임금은 과장된 것이라며 월평균 근무시간은 240시간 이상으로 늘리는 등 적절치 않은 사례로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작업현장에서는 임금 총액은 그대로 두고 기존에 지급하던 상여금, 식대 등을 기본급화해 임금 구성 항목만 사용자 임의로 변경해 최저임금에 맞춰 주는 탈법적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최저임금의 복잡한 문제를 놓고 재계와 노동계가 서로 꼼수라며 맞서고 있고, 정부와 국회도 미적거리고 있다. 당장 묘안이나 해법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제 보름후면 2018년의 새아침이 밝아온다. 새해 희망을 논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이런 여건이라면 누가 기업을 하겠느냐, 당장 내일이라도 회사 문을 닫고 싶다”고 한 J 사장의 넋두리가 하루 종일 귓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