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정생활경제팀
통화(通貨)주의자들의 스승 밀턴 프리드먼은 저서 `화폐 경제학`을 통해 “화폐야말로 한 발만 떨어져 보면 우스꽝스러운 인간적인 허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돌(石) 화폐 사례를 들어 화폐의 본질이 `믿음`에 있다고 주장했다. 남태평양 옙(Yap) 섬에선 바퀴 모양의 돌을 화폐로 사용했는데 크기가 클수록 가치를 높게 쳐줬다. 그렇다면 얼마나 큰 돌을 갖고 있어야 부자(富者)가 됐을까.

정작 이 섬에서 부자로 소문난 집에는 돌 화폐가 없었다. 먼 조상이 다른 섬에서 깎아 만든 돌을 운반하다가 폭풍을 만나 바다에 빠뜨렸다고 했다. 섬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 가라앉아 보이지도 않는 돌을 부잣집 재산으로 인정했다. 이를 두고 프리드먼은 화폐의 본질이 상식에 반하는 거대한 환상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암호화폐 열풍이 불고 있다.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에 투자하겠다는 광풍(狂風)이다. 이 바람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거세다.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20% 정도가 원화로 결제되는데 그것도 국제 시세보다 20% 정도 높게 거래된다고 한다.

누구도 보증하지 않고 책임지는 이도 없는데 가격은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초 한 개 100만원 선이었던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2천400만원을 넘었다가 1천400만원대로 추락했다. 옙섬 주민들이 바다에 빠진 돌 화폐를 만지거나 볼 수 없는 데도 부잣집이 돌 화폐를 갖고 있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경제학자들은 가상화폐 시장을 `위험한 도박판`이라 말한다. 비트코인 열풍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일종의 집단환각이란 얘기다. 인플레이션 폐해를 알면서도 돈을 찍어내는 것을 알코올 중독에 빗대기도 한다.

`돈이란 무엇인가`를 쓴 일본 파이낸셜 아카데미그룹 대표 이즈미 마사토는 “돈은 신용을 가시화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돈(money)과 화폐(currency)의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비트코인 투기를 규제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28일 “청년이나 학생들이 가상 통화에 뛰어든다거나 마약 거래 같은 범죄나 다단계 같은 사기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대로 놔두면 심각한 왜곡 현상이나 병리 현상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화폐를 대하는 신(新) 풍조를 외면만 하는 것도 옳지 않다. 다만 이것으로 떼돈을 벌겠다는 도박적 풍조와 범죄 이용에 관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막무가내식 규제가 먹히지 않는 시대다.

현재 속도로는 비트코인에 대한 `믿음`을 허물기 어렵다. 정부는 하루빨리 비트코인 시장의 거품과 투기 열기를 빼고 비트코인 거래를 정상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비트코인을 향한 믿음이 왜 허상인지부터 알려야 한다. 미성년자 거래는 금지하고, 본인 확인 절차도 강화해야 한다. 헛된 투기 열망을 올바른 투자 심리로 이끌만한 더 좋은 투자처도 알릴 때다. 믿음을 쌓는 것도, 허상을 허무는 일도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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