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br /><br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 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 박사

“`나`는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그`대들도 나를 사랑합니까? `네`네네.” 지진으로 인한 이재민과 수험생들을 위로하고자 포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포항여고 학생들이 `나그네`를 화두로 나눈 말이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수능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주일 연기 결정이 내려졌었다. 이는 여진으로 인한 안전성과 시험의 공정함을 위해 전체 수험생 59만 명 중에서 1%인 5천600명의 포항지역 학생들을 배려한 결정이었다. 대통령의 판단은 위기시에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 가치인지를 보여주었다. 수능시험이 끝난 다음 날 포항으로 내려간 문 대통령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재난 현장 곳곳을 돌아보며 이재민과 함께 식판을 들고 식사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더 특별하게 비쳤던 이유는 무엇일까?

군림하는 권력의 연출된 이미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의 삶을 보듬는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국민들의 가슴에 트라우마로 남은 것은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통령이 부재했고 끝내 그들의 아픔에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은 소외된 계층에게 더 가혹하다. 정치적 셈법에서 늘 뒷전으로 밀려나고 최소한의 삶의 평안과 안전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이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하기에 사각지대에 놓인 힘든 국민들의 소리를 먼저 듣고 헤아리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권력이어야 한다.

`애민(愛民)`의 마음은 정치의 기본이다.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통해 백성을 정성껏 보살피는 것을 목민관의 기본 본무로 제시하였다.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지키는 것을 정치의 근본으로 보아 자신을 다스리는 `율기(律己)`로부터 시작하여 `봉공(奉公)`과 `애민(愛民)`의 정신에 바탕을 두어 각 분야의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였다. 특히 `진황(賑荒)`편은 갑작스럽게 재난에 처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목민관의 역할과 소임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보여주었다. 당쟁에 빠져 민생을 돌보지 않는 당시 정치사회를 비판하며, 권문세가가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백성을 우선적으로 살피는 지도자의 실천적 자세를 강조한 다산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 사회는 일 년 전 촛불혁명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권력을 요구하였다. 사적인 연고와 수직적인 권위에 의존했던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며 추운 날씨에도 광장으로 모였던 것이다. 국민을 바라보고 올바른 방향으로 시대를 이끌어가라는 것이 촛불로 탄생한 현 정권의 책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집회를 형상화한 임옥상 작가의 `광장에, 서`라는 작품을 청와대 본관 벽에 설치한 것은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여망에 기반한 정치를 하겠다는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권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할 수 있고 주변에 정치세력을 키울 수 있다. 이에 끝까지 촛불정신을 잊지 않고 국민의 곁을 지키는 겸손한 권력이길 바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새삼 살피게 되는 12월이다. 추운 계절을 따스하게 나도록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때다. 포항 강진으로 입시 일정이 미루어진 상황에서 수험생들을 배려하여 공부방을 내주고, 또 재해를 입은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애쓴 국민들의 마음이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되고 있다. 권력은 공기와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위기를 만들고 상호관계를 지배한다. 서로 돕고 마음을 나누는 상부상조의 공동체는 공적 신뢰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멸사봉공의 자세로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고 있다는 믿음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나그네` 삼행시를 같이 하며 밝은 표정으로 대통령을 맞이했던 미래 세대들에게 계속해서 희망을 주는 `애민`의 정권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