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낙 추

봉지 속에

한 사내가 있다

꽃 떨어지자말자 봉지 속에 유폐된 사내

얼마의 내공을 쌓았기에

독방에 갇혔어도

부처님 몸빛보다 더 찬란할까

봉지를 벗기자

눈부신 가을 햇살이 황금빛에 튕겨 깨진다

몸 안 가득 채운

단물은

사내의 땀방울이다 그리움이다

세상에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고 고인

눈물이다

눈물이 매달린 배 나뭇가지 사이에서

사내가

잘 익은 자기 얼굴을 웃으며 따고 있다

가지에 매달려 봉지로 씌워진 배는 한 사내로 비유되어 있다. 봉지 속에 밀폐된 채 바깥 세상에 대해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며 기다리고 기다린 시간이 지나고 어느 가을볕에 드러난 그는 단물을 흠뻑 지닌 성숙한 열매가 된다. 시인은 배가 익어가는 얘기를 하면서 우리네 인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눈물과 그리움의 시간들, 그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이 나중에는 소담스럽고 원숙한 결실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잔잔한 감동을 거느린 시다.

<시인>

    봉지를 벗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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