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주방송작가
지진은 남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일본이나 대만, 그리고 지난해 경주 지진도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던 집이 뿌리째 뽑힐 기세로 흔들렸고, 멀쩡했던 외벽이 무너지고 아파트가 붕괴직전까지 갔다. 1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이후와 이전은 전혀 다른 시간이다.

자신의 방에서 하늘이 보인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인터뷰를 하는 이재민은 지진으로 지붕이 날아갔다며, 갈 곳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흥해에 사는 친구네는 유리란 유리는 다 깨졌다 하고, 어머니의 지인분은 하루 아침에 이재민이 돼 흥해 실내체육관에 계신다고 했다.

참고로 나는 매우 씩씩한 여자사람이다. 하지만 엿가락처럼 휘청거린 집안에서 대피해,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로 갔을 땐 멀쩡했던 외벽이 무너져 있었고, 불이 났는지 소방차 몇 대가 요란하게 왔다 갔다 했다.

현장에 있을 땐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지진 특집방송에서 방송되는 걸 본 후에 재난영화를 방불케했던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방송에서는 폭우나 폭설, 태풍이 올 땐 재난특집방송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떨리는 목소리로 섭외하고 질문지를 쓰면서도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방송을 하면서 이 정도로 긴박한 순간이 또 오겠나? 피해자인 동시에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그런 경험을 또 하게 될까 싶을 정도로 가장 손 떨리는 시간이었다.

요즘 포항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지진 이야기를 한다. 그중에 피해가 심각했던 모처에 다니는 지인은 지진 당일날 공교롭게도 관리직들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계약직과 하급자들만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진의 공포를 겪어야만 했다고 한다. 참고로 나의 지인은 만삭의 임산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건물의 파손이 심각했지만, 지진 당일의 그 흔들림을 경험하지 못한 관리자는 다음날 만삭의 임산부에게 출근을 지시했고, 심지어 다른 직원들에게 안전모도 지급하지 않은 채 건물이 안전한지 점검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직원들은 못하겠다고 버텼고, 그 관리자는 “그 정도 정신력으로 뭘 하겠냐?”는 식으로 나무라서 공분을 샀다고 한다.

이게 바로 경험과 비경험의 차이다. 지진의 공포를 지나치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도 일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 채 오히려 책망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게 바로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받는 게 아니겠는가?

몇 년 전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도입을 요구하며 포항을 찾은 적이 있었다. 중앙상가에서 서명전을 하고 있을 때 한 시민이 지나가면서 “아직도 세월호냐, 지긋지긋하다. 이제 그만 좀 하라”며 유가족들에게 비수를 꽂고 지나간 걸 본 적이 있다. 만약 포항지진을 두고도 “포항지진 이야기 그만 좀 하라, 지긋지긋하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이제 포항시민들은 지진 피해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가 되고 있다. 최소한 우리끼리는 지진 당시 무서웠던 기억도 떠올리면서 위로하고, 함께 울고 웃는 그런 공동체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또 이번을 계기로 재난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 건강한 공동체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추운 겨울, 대피소 생활을 하고 계시는 이재민들이 따뜻한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때, 우리 모두의 피해 경험도 같이 치유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