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또 다시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개헌 국민투표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특히 한국당이 개헌안에 대한 여·야 합의를 지연시키려는 듯한 행태까지 보이며 지방분권 개헌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가운데 광역단체장 출신인 홍 대표가 정치적 이유로 시대적 사명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다. 지방분권 개헌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역사적 과제다. 제1야당 대표의 입장은 분명하게 정리돼야 한다.

홍 대표는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개헌 내용은 어차피 여야 합의가 돼야 한다”면서 “지방선거에 붙인 곁다리 국민투표는 옳지 않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지난달 16일 울산 남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국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해 지방분권개헌 양당대표 특별강연에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홍 대표는 당시 강연에서 “개헌에 지방자치뿐만 아니라 헌법 전문 개정도 필요하다”며 “이제는 통일헌법을 만들어야할 시기이므로 헌법 전문 개정과 권력구조, 지방자치 모두 개헌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또 “다만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권력 나눠 먹기식 개헌은 맞지 않다”며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진보좌파와 보수우파 모두가 만족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 대표의 발언을 종합하면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시기적으로 지금은 아니라는 논리인 것 같다. 그러나 경남도지사를 역임해 지방분권 개헌의 당위성을 모를 까닭이 없는 그의 언행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민지지가 높은 진보정권 초기에 개헌을 서두를 경우, 권력구조를 비롯한 주요 개헌이슈에서 주도권을 놓치고 끌려가게 될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이 가는 대목이기는 하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특위 전체회의에서 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개헌의 명분은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있다”고 했다. 같은 당 정용기 의원은 “권력구조, 정부형태와 관련된 부분을 배제한 개헌 논의는 잘못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의 `지방분권 개헌은 국내 현실에 맞지 않다`는 해괴한 발언도 나왔다.

개헌을 염원하는 지역민들은 그 동안 개헌논의 과정에서 권력구조 논쟁에 묻혀 또다시`지방분권 개헌` 열망이 도외시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해왔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한국당이 `지방분권`마저도 정치공학적 셈법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지방분권개헌에 대한 반대 전략으로는 자칫 한국당이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참담한 사태를 맞을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홍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지도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