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장신(莊辛)이라는 대신은 양왕(襄王)에게 사치하고 음탕하여 국고를 낭비하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왕 또한 사치한 생활을 그만두고 국사에 전념할 것을 충언했다. 그러나 왕은 오히려 욕설을 퍼붓고 장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장신은 결국 조(趙)나라로 갔는데, 5개월 뒤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해 양왕은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처지에 놓이게됐다. 양왕은 그제서야 비로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조나라에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들였다. 양왕이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를 묻자 장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고 했습니다. 옛날 탕왕과 무왕은 백 리 땅에서 나라를 일으켰고, 걸왕과 주왕은 천하가 너무 넓어 끝내 멸망했습니다. 이제 초나라가 비록 작지만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기우면 수천 리나 되니, 탕왕과 무왕의 백 리 땅과 견줄 바가 아닙니다.”여기서 망양보뢰(亡羊補牢)는`이미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 실패를 해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말이다. 부정적인 뜻보다는 긍정적인 뜻이 강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속담은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한국에서도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뜻의 망우보뢰(亡牛補牢)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사후청심환(死後淸心丸)·만시지탄(晩時之歎)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아까운 목숨이 스러진 낚싯배 사고를 보며 느끼는 국민들의 소회 역시 바로 망우보뢰(亡牛補牢)로 표현되는`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낚싯배 안전에 대한 우려로 용역결과까지 나와있었는 데도 대책 마련에 우물쭈물 하다 터진 사고였다니 더욱 개탄스럽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가권력의 무능함에 대한 비난이 탄핵으로 이어졌는 데도 또 다시 이런 비극이 반복된 것은 무엇때문인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국가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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