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수<br /><br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역사적으로 많은 개혁들은 기존하는 부조리를 뜯어고치고자 하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기존 질서와 문화가 개혁의 온실이었다. 마틴 루터는 500년 전 당시의 기존 교회에서 행해지는 부조리를 뜯어고치고자 행동을 취하였고, 그 운동은 프로테스탄트교 또는 개신교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까지도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성서를 당시 상용언어로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번역하는 사람들을 화형에 처하기까지 했고, 악명 높은 면죄부를 판매하고 있었고, 교황과 왕들 간에 끊임없는 권력 투쟁 등 세속적으로도 수치스러운 행위를 자행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칼 마르크스가 유물론 사상과 공산주의 이론을 전개한 것도 당시의 두가지 기존 체제이었던 중세 교회와 봉건제도에 대한 도전에서 싹튼 것이다. 교회의 부조리와 모순적인 행위는 마르크스로 하여금 유물론 사상을 발전하게끔 만들었고, 사회를 지주 계급과 농노 계급으로 나눴던 착취적인 봉건제도는 공산주의 이론을 전개하는 발판이 됐다.

시장경쟁 자본주의가 18세기에 싹트고, 1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고, 자본가 계급에 의한 노동자 `착취`가 어린이 노동자에게까지 확대되면서 공산주의 이론에 힘이 가했으며 1917년에는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이 발생했다. 19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발생한 남북전쟁도 당시의 기존질서의 하나였던 노예제도를 쟁점으로 하여 일어났다.

미 백인들은 남부의 거대한 땅의 농산물을 다루기 위한 편법으로 흑인들을 노예로 아프리카에서 `수입`하였고, 노예들은 대(代)를 이어 인간의 권리와 존엄이 짓밟히며 살아오고 있었다. 인류평등과 사랑을 기초로 한 기독교가 강했던 남부지역에 노예제도가 번창하였던 것도 종교가 노예제도를 정당화 또는 묵인했었기 때문이었다. 흑인들이 겪었던 참혹상황들은 저절로 우리의 눈을 적시게 만든다.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서구 국가들이 유지해왔던 식민제도 역시 그러하다. 식민 정책은 3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원주민 지역에 상선이 들어가 원주민들의 물질욕구를 사로잡고, 다음에 선교인 배가 들어와 원주민들의 정신과 영혼을 사로잡고, 군인들 배가 들어와 무력으로 지역을 장악한다. 미국만 해도 미대륙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개척`하는 과정은 `용맹`의 양면성인 개척정신과 무자비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백인 개척자들과 대결하는 원주민들의 수난 과정도 역시 눈을 적시게 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개혁들은 얼마의 기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도 다른 문제들을 대두시켜 또다른 개혁을 필요하게 한다. 새로운 기성세대와 질서의 개혁이 필요하다. 개신교가 500년 전에 가톨릭교회의 세속적으로도 수치스러운 행위들을 일부 제압했으나 교리와 종교적 관행을 제외하면 가톨릭교회와 크게 다를 바 없이 흘러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교파로 분열됐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지식의 발전과 함께 이제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여 종교의 힘이 일상생활과 인류의 문명 발전에서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공산주의 제도는 70년 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시점으로 세계적으로 붕괴되었으나 이제는 민주주의 정치의 부조리들이 세계적으로 표출되어 사회 불안정감은 계속되고 있다. 링컨이 19세기 중반에 노예해방을 선포하고도 흑인 차별정책은 그 후 100년간 지속되었고 차별적 관행의 잔재는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군사력에 의한 식민제도는 20세기에 거의 사라지고 피 식민국가들이 독립하였으나 식민지 세대에 억눌려 있었던 내부파벌이 폭발되고, 독재자들이 생명과 인권을 유린하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무력 충돌들을 일으키면서 경제후진과 사회혼란을 초래하였다.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헌법상의 민주정치를 실현하고 우리의 사회문화와 관행들을 끊임없이 개선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은 물론 기성세대들도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