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땅이 흔들렸습니다. 모든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인간이 땅 위에 쌓아올린 온갖 것들이 한낱 사상누각이었습니다. 사람들, 문을 닫아걸었던 집을 뛰쳐나와 불안과 공포에 떨며 서성거렸습니다. 평수를 늘리고 공들여 가꾼 집도 더 이상 아늑한 보금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문명의 바벨탑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새삼 절감합니다.”

작년에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놀란 가슴으로 인터넷에 올렸던 글의 일부입니다. 이번에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밑에서 또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호랑이를 보고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을 했는데 또 다시 호랑이를 만나 혼비백산한 격이랄까요.

작년보다 진도는 낮다고 하지만 지표에서 얕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이라 피해의 정도나 체감한 충격은 더 큰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되풀이 되는 여진으로 인해 배가된 불안과 공포는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불안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침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외에도 사고나 질병, 자연재해 등 살면서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위험 요소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없을 수가 없지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요소까지를 포함해서 불안을 갖게 되는 이유를 보통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

불안의 요소 중에 가장 저변에는 `소멸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가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절단에 대한 불안`입니다.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불안감이지요.

세 번째로는 `자유의 상실에 대한 불안`을 들 수가 있습니다. 마비되거나 갇히거나 제재를 당해서 스스로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되는 상태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물리적 차원의 `폐소공포증`을 일컫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네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분리에 대한 불안`입니다. 버려지거나 거부되어서 관계를 상실하는데 대한 불안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존중의 대상이나 가치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집단 따돌림 등이 개인에게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아의 죽음`에 대한 불안입니다. 수치심이나 자괴감 등으로 자신감을 잃어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겁내고 실패를 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안이란 본질적으로 위해한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긴장하고 경계해 위험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심리적 기능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불안이 평균적 일상에 함몰되어 본래성을 상실한 존재의 고유성을 드러낸다고도 보았지요. 하지만 위험의 정도에 비해 과도하게 불안을 느끼는 경우는 불안장애나 공황장애, 강박장애, 심리적 외상 스트레스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불안장애나 우울증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다잡아야겠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나간 들녘에 청둥오리들이 떼를 지어 내립니다. 덜 추운 곳에서 겨울을 나려고 만 리 길을 날아온 철새들입니다. 오로지 맨몸 하나로 살아가는 저들에게는 지진에 대한 공포 따윈 없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진에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은 인류의 문명일 뿐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 걸 알겠습니다.

`메멘토 모리`란 말처럼, 지진의 공포와 불안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각성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불안을 덜기 위해선 욕심과 집착을 덜어내고, 보다 겸허하게 지금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삶이기를 다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