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물설고 낯설다는 말을 실감한다.

28년을 함께한 포스텍을 떠나 대구 디지스트(DGIST·대구경북과학기술대학교)로 온 지도 이제 석 달이 지났다.

아직 포항의 사무실도 정리가 덜 끝났고, 주민등록도 그대로 있다. 학교가 제공하는 관사는 떠났지만 학교 부근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주말을 보내며 포스텍 스태프들과 테니스도 치고 있다. 아마도 짐 정리는 떠나지 못하는 마음의 핑계일지도 모른다.

유학과 미국 교수 생활을 마치고 포항에 처음 왔을 때 낯설은 투박한 포항 사투리에 적응해야 했고 과메기, 물회 등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던 음식도 먹어봐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이제 포항이라는 고장에 잘 적응하고 과메기를 냉장고에 채워놓고 먹는 포항인으로 변해 있다.

그러기에 다시 시작한 대구 생활은 또다시 물설고 낯선 생활이었다. 28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우선 음식이 과메기에서 곰탕으로 바뀌었다. 이곳 디지스트가 있는 대구 달성군 현풍면은 현풍할매곰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행히 곰탕은 원래 좋아하던 음식이기에 과메기처럼 적응 기간이 필요하지는 않아 좋다.

디지스트!

30년 역사에 국내 정상으로 우뚝선 포스텍 만큼 좋은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을 가졌고 그 야심을 달성할 잠재력이 있는 대학이지만 해야 할 일은 많다.

그건 30년 전 포스텍이 가졌던 숙제와 똑같은 것이다. 우선 대학의 호칭도 정립돼야 한다. 포스텍이 단과대인 포항공대에서 종합대 포항공과대학교를 거쳐 포스텍(POSTECH)이란 이름으로 정착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디지스트도 마찬가지 고민을 안고 있다. 디지스트라는 호칭이 맞는 것인가라는 토론이 거듭된다. 홍콩과기대(HKUST)는 H-K-U-S-T로 일일이 나눠 부른다. 그래서 디지스트도 D-G-I-S-T로 나눠 불러야 하는 건 논리상 맞다. 그러나 단어를 다섯 음절로 나눠 부르는 불편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난주 대만의 타이중이라는 도시에서 국제대학 관련 평가회의가 있었다. 이제 포스텍 명예교수이자 디지스트를 대표하는 참가자로 디지스트를 수백 명의 참가자 앞에서 소개하면서 미묘한 감정이 흘렀다.

그동안 포스텍에서 국제협력, 해외평가관리를 맡아 수십 번 국제회의에서 포스텍을 홍보하고 소개했다.이제 다시 나 자신에게 디지스트의 브랜드를 씌우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도전해 볼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도전욕이 솟는다.

디지스트의 브랜딩에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포스텍과 디지스트를 같은 스펙트럼에서 두 대학을 홍보할 좋은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대학 모두 과학특성화 대학이고 서울의 큰 종합대학에 비하면 단과대학과 같은 작은 규모의 대학이지만 우수한 학생과 교수를 보유하고 좋은 실험시설, 그리고 대학원 중심 대학이라는데 공통점이 있다.

디지스트가 포스텍으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큰 것은 애교심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텍은 초창기 직원이나 교수들의 애교심이 대단했다. 그건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을 설립한다는 자존심이었다.

디지스트도 한국 최초로 학과 없는 학부의 융복합대학을 설립한다는 자존심을 가지고 모교 사랑을 키워야 한다. 직원과 교수의 애교심은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결국 우수한 학생이 숨쉬는 대학을 만들 수 있다. 필자에게 포스텍, 디지스트는 모두 사랑해야 할 애정의 대상이다. 두 대학 모두 서로 끌고 밀어주면서 한국의 과학과 기술의 전당으로 세계에 우뚝 서는 대학이 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