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 개혁을 위해 전 방위적 적폐 청산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행정 각 분야별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까지 가동하여 지난 정권의 적폐를 발본색원하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과 핵심요직, 문고리 3인방 등은 이미 구속된 상태이다.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도 국정원 특활비 상납문제로 구속되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다시 국정원 정치 개입문제로 추가적 조사를 받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조사 관련 경찰 간부들도 검찰조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도 사무실과 가택 수색을 받았고 검찰소환을 눈앞에 앞두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이라 규정하고 이를 저지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완장을 두른 점령군`식 행세이며 이는 `신 적폐`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정권에서 소외된 관료들을 복권시켜 대대적인 정치 보복 숙청을 단행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사직한 조웅천 민정비서관은 민주당 공천 국회의원이 되었다. 여주로 좌천된 윤석열 지청장은 서울지검장으로 승진되어 적폐 청산의 주역이 되었다. 블랙리스트 관련 문체부 노태강 국장은 차관으로 승진 기용되었다. 자유한국당은 여당의 정치 보복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적폐와 보복은 동일 사안에 대해 보는 입장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다.

이를 보는 시민 사회의 여론도 둘로 갈려 있다. 지난해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진보 세력은 적폐 청산이 바로 촛불 민심의 반영이라는 입장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구출하겠다고 태극기를 든 사람들은 적폐 청산을 반대하면서 아직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외치고 있다. 즉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진보 개혁 세력은 적폐 청산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이에 반해 보수층들은 새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적 보복과 탄압으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역사는 광장 민주주의의 요구를 정치권이 슬기롭게 수용하여 타협하지 못할 때 또 다른 비극이 탄생함을 일깨우고 있다. 정당간의 정권 교체 초기에 등장하는 지난 정권의 적폐 청산 문제는 그것이 정치적 갈등으로 확대되는 비극은 막아야 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차제에 정권 교체기의 `청산과 보복`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하여야 한다. 사실 여야는 상호 입장이 바뀐 지 겨우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은 집권 민주당의 `적폐 청산`을 무조건 `정치 보복`이라고만 간주해서 안 될 것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아직 70%를 넘고, 민주당 지지도마저 50% 이상된 시점에서 그 처신은 옳지 못하다. 물론 여론은 쉽게 변할 수 있지만 이 상황에서 무조건 정치 보복만을 외치는 것은 대국민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유한국당은 집권 여당에 대한 비판에 앞서 `보수 개혁`이라는 당 조직 개혁부터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자유한국당은 정당의 과감한 수술을 통해 실추된 당 이미지부터 쇄신할 때 20% 이하인 당 지지율이 반등하기 때문이다.

집권 민주당도 적폐청산을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된다. 개혁 선도세력의 단번에 적폐 청산을 해치우겠다는 신념만으로 적폐는 청산될 수 없다. 흔히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개혁에는 언제나 저항이나 반항이라는 반개혁 세력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집권당의 개혁 주체들은 적폐 청산 대상과 범주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나아가 이들의 도덕성이 구비되고, 그 청산 과정이 공정할 때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집권 민주당이 대선 승리에 도취하여 무소불위의 적폐 청산을 서두른다면 또 다른 적폐를 양산할 뿐이다. 정치권은 이제 국민의 정치의식이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을 구분하는 수준은 되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