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지역 출신 故 김아귀 옹
`피의 능선` 전투 등 참전, 전사
비군인 노무자 처음 신원 확인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 열려

▲ 23일 오전 `6.25전사자 고(故) 김아귀`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가 상주 사벌면 어풍로 김학모씨 자택에서 열렸다. 관계자가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를 고인의 아들인 김학모씨에게 전달하고 있다. 김아귀 씨의 유해는 강원도 양구군에서 발굴됐다. /국방부 제공

【상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3일 6·25전쟁 당시 비군인 참전 노무자 중 최초로 신원이 확인된 고 김아귀님(1911년생)에 대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가졌다.

고 김아귀님의 아들 김학모(경북 상주 사벌면)씨의 자택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국유단 단장을 비롯해 책임지역 부대장(50사단 120연대장, 대대장), 상주시장, 사벌면장, 유가족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국유단은 행사에서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 수습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같이 발굴된 플라스틱 숟가락 등 유품을 전달했다.

고 김아귀님은 1951년 10월 노무단제 5009부대(103사단 109연대) 소속으로 6·25전쟁 당시 피의 능선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이번 6·25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26번째이며, 올해만 여덟 번째 성과다.

특히, 최초로 비군인 참전 노무자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고 김아귀님은 1911년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서 7남 1녀 중 맏이로 태어나 1933년 3월 최순백(2010년 사망)씨와 결혼해 슬하에 3남 3녀를 뒀다.

1951년 5월께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대구 노무단 양성소를 거처 노무사단 5009부대에 배치돼 참전했다.

`한국노무단(KSC/Korea Service Corps)`은 유엔군이 1951년 6월 전투병력을 절감하고, 전장에 보급품을 즉시 운반하기 위해 민간인 운반단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노무자를 흡수해 창설했다.

휴전때까지 운용된 노무자의 숫자는 1만3천여 명에 이르렀으며, 1951~1953년까지 확인된 희생자만 해도 8천794명이다.

고 김아귀님은 양구 수리봉 일대 피의 능선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전투 지원활동을 하던 중 적 포탄에 맞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당시 같이 참전했다가 생존한 마을주민 증언)

고 김아귀님의 유해는 2010년 10월과 2012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수리봉 일대에서 플라스틱 숟가락, 불명비닐 등 유품과 함께 부분유해로 발굴됐다.

유해는 발굴됐지만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가 2017년 6월 17일, 상주에서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아들 두 사람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고, 이후 유전자 검사를 거쳐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게 됐다.

전사자의 아들 김학모씨는 “아버지께서 참전 하실 때 제 나이는 고작 10살이어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유해를 찾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제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볼 수 있어 감격스럽다”며 “전쟁 이후 어렵게 살면서도 아버지의 전사확인증을 받기 위해 육군본부, 대구지방 병무청 등 백방으로 뛰어 다닌 것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대령)은 “국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대한민국을 목숨 바쳐 지켜낸 호국 영웅들에 대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을 이행하는데 의미가 있다”며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계신 전사자 분들이 아직도 12만3천여 위나 계시는 만큼 마지막 한분까지 찾아서 하루 빨리 가족의 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신원이 확인된 고 김아귀님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추후 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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