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모든 걸 내려놓음으로써 새로움을 준비하는 자연의 분주함에 고개가 숙여지는 요즘이다. 은행잎은 바람의 도움 없이도 이젠 스스로 내려올 줄 안다. 바람 없는 날 은행잎들이 떼로 이륙하는 모습은 장관을 넘어 숙연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가 아니라 가장 전성기일 때 놓을 수 있는 자연의 용기는 인간들에게는 멀기만 한 이야기이다.

학년 말, 학교에도 더 큰 세상으로의 비상을 위해 떠날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 분명 그 학생들도 처음에는 자연과 닮았었다.

꿈이 많고, 고마움과 감사함을 알던 그들의 모습은 자연 그 자체였다. 늘 웃음이 떠나지 않던 그들이 있어 세상은 따뜻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이젠 `자연(自然)`이란 말은 우리나라 학생들은 물론 교육계에 너무 낯선 단어가 되어버렸다. 인위(人爲)가 판치는 학교에서 사어(死語)가 되어 버린 자연의 뜻을 사전에서는 여러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여러 가지 뜻 중에 공통적으로 붙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있다. 이 수식어를 보면서 인위(人爲)적이라는 말이 왜 자연의 반대말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인간`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는 쾌감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발전이라고 떠벌렸다. 쾌감에 도취된 인간들에게 자연의 경고는 무용지물이었다. 아프지만, 정말 많이 아프지만 포항의 지진 또한 분명 자연의 경고다. 하지만 호들갑만 떠는 인간들은 이번에도 얼마동안 난리법석을 피우다가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진리, 그것도 절대 진리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그래도 필자가 믿는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 인과응보(因果應報)”이다.

인간이 자연을 거스름으로써 겪는 큰 아픔 중 하나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나라 학생들에게서 더 이상 자연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성(自然性)을 잃은 학생들은 이제 인위적인 학교에서 뭔가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학교 안보다 학교 밖에서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면서 자신의 꿈을 찾으려 애쓴다. 수십만원 하는 학원비는 아깝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학교에 내는 몇 천원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부터 보이는 게 교육 현실이다.

요즘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내신과 졸업장 때문이다. 학생들은 진짜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단지 학교는 학원숙제를 하는 곳, 또 학원 공부를 위해 에너지를 보충하는 공간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학생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심지어 학교 시험공부도 학원에서 하니 할 말 다했다. 지난 주 지진 때문에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피해 소식을 들으면서도 안타까웠지만, 어느 수험생 학부모의 인터뷰를 보면서는 숨이 멎었다. “수능 끝나고 논술 학원 등 학원 수강신청을 해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신을 위한 학교 시험을 끝낸 중3과 고3 교실의 모습이 어떤지는 잘 알 것이다. 이들 교실에서 수업이 이루어질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이들 학생들을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교육 당국은 `학년 말 내실 있는 학사 운영`과 관련된 공문만 보낼 뿐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지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보면 한 학교에 두 개의 학교가 존재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차라리 이럴 거면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의 학사 일정을 다른 학년과 달리 하면 어떨까. 굳이 모든 학년의 학사 일정을 똑같이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수업 일수 등 탄력적인 학사운영이 필요할 때다. 교실이 영화관과 수면실로 바뀌는 지금의 학사운영은 학생들을 자연과 더 멀어지게 할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