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학문을 후흑학(厚黑學)이라 한다. 청나라 말기 중국에서 파생한 이론이나 학문이라기보다는 생존방법을 제시하는 처세술에 가깝다. 그러나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데는 후흑학 만큼은 필수라는 얘기도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국의 역사 속 승리자인 영웅호걸은 대체로 명분과 자존심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남보다 두꺼운 얼굴과 검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나라 고조 유비는 비굴하였지만 천하를 얻었다. 간계하기로 유명한 조조는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점잖고 명분에 죽고 사는 사람이 반드시 영웅호걸의 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후안흑심(厚顔黑心)이라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 “얼굴은 두꺼울수록 좋고 마음은 안 보일수록 좋다”는 의미다. 여기서 후안은 방패요, 흑심은 창이다. 세상 온갖 사람이 비난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후안과 아무리 하고 싶은 말도 꾹 참는 흑심을 처세의 본질로 보는 철학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이 있다. 아주 작은 벼룩도 얼굴이 있다는 말로 사람이 뻔뻔스러울 때 비유해 쓴다. 보통 얼굴이 두껍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으로 여긴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그 말이다. 같은 후안(厚顔)이란 말이 붙었지만 후안흑심과 후안무치는 의미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영웅호걸의 길이다. 후자는 그야말로 부끄러움의 극치를 이를 때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후안무치하다는 비난을 또다시 받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운영위가 국회의원 보조관 1명을 더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본회의 통과가 되면 국회의원 보좌관은 현재 7명에서 8명으로 늘어난다. 매년 67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간다. 정치인들의 낯이 두껍다는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선거 때마다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설명하던 그들의 모습은 어디갔는지 없다. 머리 터지게 싸우던 여야가 자신들 이익에는 손발이 척척 맞으니 후안이 따로 없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우정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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