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주방송작가
얼마 전 포항의 한 고등학교에서 직업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라디오 작가로 일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혹시 라디오 자주 듣나요?” 라는 질문을 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나의 학창시절에 라디오는 빠질 수가 없었다. `별밤`과 `두시의 데이트`를 즐겨 들었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송과 가요를 공테이프에 녹음하고 나중에 그걸 듣고 또 들었던 시절이었다. 가끔 엽서에 사연을 보내 소개가 되면 세상 다 얻은 것처럼 기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라디오를 얼마나 열심히 들었던 지 프로그램 사이에 나가는 광고 방송을 다 따라부를 정도로 라디오와 함께 한 학창시절이었다.

그런데 가끔 방송을 듣다 보면 서울에 비가 내리는 날엔 하루 종일 비와 관련된 가요와 팝송을 들어야만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비라도 내려주면 감사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일부러라도 비가 내리는 서울지역에 감정이입을 해야만 했다. 서울 이외 지역에 대한 배려는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서 실시간으로 청취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지만, 그때는 엽서와 손편지를 보내야 사연이 도착했던 아날로그 시대라 `내가 살고 있는 곳엔 해가 쨍쨍해요`라고 사연을 엽서에 적어 우표를 붙이고 방송에 소개되는데 2박 3일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얼마 전 모 프로그램 진행자가 서울에 비가 내린다는 멘트를 길게 하니, 실시간으로 청취자 한 사람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반박을 했고, 해당 진행자가 사과 방송을 하는 걸 들었다.

그래 지금은 이런 시대다. 지역방송에서`로컬리티(locality·지역성)`는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아이템이다.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영화 `라디오 스타`처럼 마을 잔치 소식이나 소소한 사연을 소개하는 지역색이 살아있는 그런 방송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지금도 그 다짐은 유효하다.

지역의 이야기는 지역에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주변부의 이야기다. 그래서 애써 이야기해야 하고, 이런 역할을 지역방송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방송이 포항, 경주, 울릉, 영덕, 울진 지역에 방송되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골고루 분배해서 아이템을 잡고 방송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방송국이 포항에 있다고 포항방송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에 지방분권을 개헌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중요하다. 참여정부 시절 지방분권은 수도권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밀려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추진했던 중앙정부에 대해 지방의 반발은 미약하다 못해 전무한 수준이었다.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긴 했지만 선언적 수준에 그쳤고, 그마저도 파급력은 크지 않았다.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과연 지역이 지방분권을 바라긴 바라는 걸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저 중앙정부의 눈치보기에만 급급했던 지자체나 지방의회, 그리고 지역 국회의원들은 이번 지방분권 개헌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 지역의 요구나 목소리를 모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적기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공영방송 파업이 두 달을 넘기고 있다. 이제 끝이 보이긴 하지만 파업 이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공영방송이 정상화 되고, 방송이 그 어떤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지역방송이 지역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 방송의 공공성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응원의 마음을 보태 주시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