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수험생들 불안 증세
약한 여진에도 `두근두근`
시험 당일 소동 땐 치명적
실력발휘 못 할 가능성 커

▲ 포항 지진발생 엿새째인 20일 오전 수업이 재개된 포항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일찍 등교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지진 상황에 따라 수능성적이 달라져서야 되나”“시험 자체보다 지진에 따른 상황대비 요령이 더 복잡하다”

포항지역 고3 수험생들이 오는 23일 수능시험을 앞두고 혼란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가 20일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포항지역의 수험장 4곳을 변경하고 23일 수능시험을 예정대로 치르는 내용의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관리방안을 발표하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2·3·4·5·6·7면> 여진 발생 등 여러 상황을 가정한 시험 관리대책마저 오히려 모호한 구석이 많아 지역 수험생들의 불안을 오히려 가중시키고 있다는 반응이다. 현재 상태로는 정상적으로 수능시험을 치르기가 어려워 사실상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포항지역에서 수능을 치르는 고3 수험생들은 당초 수능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규모 5.4의 강진이 덮친 데 이어 50여 차례의 여진이 잇따라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실질적으로 수능시험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험생들은 수능고사장 변경에다 지진단계별 수능요령까지 챙겨야 해 공황 상태에 빠진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수험생과 학부모, 일선 고교 교사들은 “이번 수능은 포항지역 수험생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오는 23일 시험 도중 예상 외로 심각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되느냐”면서 “정부 발표문과 관계자 문답을 꼼꼼히 읽어봤지만 어떻게 되는건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들은 “일선고사장 책임자(교장)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하다”며 “연기된 수능일에 지진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여진의 강도에 따른 3단계 대처 방안의 기준이 모호한 데다 감독관별로 상황에 대한 개별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약한 지진 발생시 시험 재개 여부 판단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는 점도 문제삼고 있다. 일부 시험장에서만 시험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대응 방침도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창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특정 학교만 시험을 못 보는 경우 국가재난사태에 해당한다”면서도 “국가 전체적으로 재시험을 볼지, 시험을 못 치른 학생에 국한해 따로 대책을 마련할지는 추후 충분한 논의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대비책이 없다”고 말해 불안을 증폭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본부장은 관련 질의가 이어지자 “일부 시험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비책이 논의된 것은 있지만 지금 발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충분한 숙고를 거쳐 발표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이 본부장이 말한 `대비책`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는 수능이 중단될 경우 올해 안에 시험을 다시 치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책 역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운동장으로 대피할 정도의 체감 강도가 있으면 그 고사장은 시험을 중단하는 것으로 판단하면 된다”며 “출제 규모와 출제 공간 확보 문제 등을 고려하면 2018학년도 입시를 위한 수능을 다시 보기는 힘들다. 해당고사장에 대한 내부 매뉴얼을 갖고 있으며 구제 방안을 포함해 나중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지역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지진 상황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할 판”이라며 불안감을 숨기지 않았다.

포항 북구의 한 고교 교사는 “학교에 앉아 있으면 학생들이 뛰는 소리만 나도 지진이 난 것은 아닌지 놀란다”면서 “남구로 가서 시험을 치른다 해도 시험 중간에 15일처럼 지진이 나면 학생들이 우왕좌왕하고 큰 소동이 일어날 텐데 사실상 시험을 망치는 거나 다름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만에 하나 자동차로 40분 가량 걸리는 경산이나 영천으로 시험장을 옮기게 될 상황을 가정하면 아찔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고3 딸을 둔 학부모 이미연(46·주부)씨는 “한창 예민한 시기의 딸아이가 집에 물이 안나와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포은도서관에 가서 자투리로 공부하고 있다”며 “3년을 꼬박 공부만 해 온 아이인데 지진이 발생한 이후 집중력이 크게 떨어져 불리하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지진 대처 법을 숙지하고 격려하는 등 수험생을 진정시키는 등 침착한 대응책을 펼치고 있다.

영신고 김형수(3학년부장) 교사는 “우리 학생들이 수년간 열심히 노력해온 실력을 발휘하는 중요한 순간에 예측 불가능한 이런 상황이 발생해 마음이 아프다”며 “하지만 지난해 9월 경주지진 이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진 대응 훈련을 자주 했고 학생들이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진 발생 시 동요하지 않게 각 반 담임교사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격려를 해줄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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