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수<br /><br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지난 2010년 미국생활 35년 만에 한국에 와 보니 내 눈에는 그동안 강산이 서너 번이 아니라 수없이 변했다. 한자(漢字)도 사라지고, 새로운 단어들도 못 알아듣겠고, 한국화된 영어를 한국어로 표기하니 읽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역이민 생활을 하는 셈이었다.

특히, 돌아다니려면 길도 서툴고, 새 지역도 많이 생기고, 서울에선 전철 버스 노선도 하도 많아, 미국 와서 어리둥절 하던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때마다 지나가는 분들에게 묻곤 했는데, 하루는 세 분이나 친절히 시간 내어 가르쳐 준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오전에 서울 동쪽 지역에 소재한 대학을 방문 후, 학교 정문 앞 거리에서 인천 송도로 가기 위해 인근 전철 정거장을 찾고 있었다.

마침 길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던 한 학생에게 물었더니 이리저리 가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재빨리 길을 건너고, 우리는 다음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그 학생이 반대편에서 우리를 향해 다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우리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었다고 하며 다시 설명해주고, 이번에는 우리와 함께 길을 건너고 어느 지점까지 동행해 주기까지 했다.

전철역 안에서 들어와서는 송도로 가기 위해 어느 전철과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미리 확인해야 했다. 마침 편의점이 있어 주인에게 물어보았는데 주인은 손님들이 북적이고 있었고 물품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줄 서 있는 손님들도 아랑곳 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스마트폰을 검색해 주었다. 그분의 설명대로 연세대 입구 전철역까지 와서 송도 가는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버스번호 별로 구분된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그 버스가 곧 온다고 하고도 세 번이나 오지 않아 옆의 학생에게 물었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버스회사에 전화까지 하고 노선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가 가는 방향과 반대편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줬다.

이제는 그만 가 보라고 해도 우리가 타는 것을 확인하겠다며 그 학생도 함께 우리 승강장으로 이동하지 않는가.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오래 걸려 기다리면서 그 학생과 전공과목과 장래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 번은 스마트폰 네비에 의존하여 대전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대전 입구에서 스마트폰 배터리가 소진되었다. 마침 길가에서 요구르트, 우유 등을 파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니 그 분도 물품을 사려는 손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내가 그분에게 나는 기다릴테니 손님 서비스부터 하시라고 말해야 했다.

그 분의 설명을 듣고 내 차로 돌아와서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그 분이 상품들을 자리에 두고 우리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더 좋은 길을 찾았으니 그리로 가라는 것이다.

지난 여름에는 아내와 함께 포항에서 미국으로 오기 위해 네 개의 육중한 짐과 세 개의 작은 짐을 들고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주차장에 짐들을 내려놓고, 한 짐씩 끌고 승차장까지 가야 했다.

첫 짐을 끌어다 놓고 다른 짐을 가지러 오는데 여자 두 분이 한 짐씩 끌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한 분은 짐 하나를 더 가져다 놓으려고 다시 주차장으로 가려고 했다.

여자분들에게 힘든 일이므로 내가 하겠노라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게 했다.

한국에서 최근 7년간 있으면서 이 외에 내가 길을 묻거나 교통편에 대해 물으면 친절히 시간 내 준 고마운 분들은 엄청 많았다.

40여 년 전 미국으로 떠날 때도 느꼈지만, 개인적으로 우수한 재능과 좋은 마음씨를 가진 분들이 우리 사회에 아주 많다.

서구 사회 보다 많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 갑을 사회`에 살다 보니 집단으로서의 사회행위는 서구 사회 보다 많이 뒤떨어진다고 필자는 본다.

개인들의 좋은 자질, 성품들을 공동 사회에서도 십분 발휘하여 우리 사회가 더욱 윤택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도록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