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뚜껑을 보고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자라를 보고 놀랐던 사람은 자라등과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을 보고 놀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이런 경우다. 트라우마(Trauma)는 의학용어로 외상(外傷)이지만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을 일컫는다.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 상처를 경험하며 산다. 정신적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피부에 생긴 가벼운 상처는 약을 바르면 쉽게 흔적 없이 치유된다. 우리 몸의 자생력 때문이다. 그러나 수술을 받은 큰 상처는 자국을 남기게 된다. 정신적 상처도 똑같은 과정을 가진다. 이를 우리는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어릴 때 먹고 한번 체했던 음식을 평생 못 먹게 되는 경우도 일종의 트라우마다. 살면서 이런 경우는 많다. 교통사고 크게 한 번 낸 사람이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같은 증상이다. 가벼운 `기억의 고통`이라면 그냥 참고 넘길 수 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심리적 상흔으로 혼자만 치부해도 된다.

그러나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의 충격으로 받은 스트레스는 `나쁜 기억의 고통`이다.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 이것이 집단의 트라우마라면 사회적 문제까지 유발할 수 있다. 포항에는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두고 대피소 생활을 한다. 심리적 불안을 다른 모습으로 재현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건물의 붕괴와 같은 재산상 손실은 예산으로 재건이 될 수 있으나 정신적 피해는 회복이 쉽지 않다.

우리사회의 관심이 지진이후 후유증에도 집중돼야 할 이유다. 심리치료 등이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으나 소홀함이 있으면 안 된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사물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 등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공포감으로 발전한다. 포항지역 시민들 사이에는 아이를 데리고 대구 등 친적집으로 떠나는 사례도 있다. 두려움에 대한 행동방식이다.

미국의 9·11 테러 후 맨해튼 주민의 9.7%가 우울증 증세를 경험했다고 한다.`기억의 고통`에서 벗어날 우리사회의 관심은 지금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우정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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