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최악의 지진 피해지역 `흥해`
이재민들로 대피소 `북새통`
여진올까 불안에 `들락날락`
피해지역 걱정에 `노심초사`

□ 포항 공포의 밤

“여기 실내체육관에 있는 게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여진은 계속되는데 앞으로의 일이 더 막막합니다”

지진 발생 당일인 15일 늦은 밤 지진의 진앙지로 포항에서도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흥해읍.

한바탕 소동이 가라앉고 어둠이 깔린 지도 이미 시간이 꽤 지났지만,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 내부는 발 디딜 틈 없이 오가는 사람들과 환하게 밝혀진 조명으로 대낮을 방불케 했다. 시곗바늘은 이미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나 한사람이 겨우 지날만한 통로만 남겨두고 빼곡하게 깔린 매트에는 어림잡아도 500명은 넘어갈 듯한 주민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흥해읍의 인구는 3만5천여명. 늦은 시간에도 계속되는 여진으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인파가 계속 몰려들고 있었지만, 수백여명으로도 꽉 차버린 좁은 체육관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일부 주민들은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진이 올 때마다 웅성거리던 분위기가 지속되길 수 시간, 자정이 가까워 오고 체육관의 조명도 일부를 남겨놓고 꺼지자 주민들은 하나 둘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지진관련 뉴스를 검색했고 불안감에 체육관을 들락날락 거리는 주민들도 꽤 됐지만, 다수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자정을 넘긴 지 얼마 안 돼 `쿠궁`하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여진이 발생하자, 누워 있던 주민들은 벌떡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부는 아예 체육관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길 수차례, 잠은커녕 소란 속에서 극도로 예민해진 대피소 주민들의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다.

정차순(69·흥해읍 성곡리·여)씨는 “경주 지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직접 겪어보니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겠다”며 “대피소인 체육관조차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어 혹시나 조명 등 구조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밤을 지샜다”고 말했다.

강봉자(72·흥해읍 성곡리·여)씨도 “대피소 바닥이 나무로 돼 있어 진동이 더 잘 전달되는 것 같다”며 “예민해져서 그런지 발자국 소리에도 놀라 겁에 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공포 속에서 밤을 지새웠던 첫날이 지나고 드디어 날이 밝아 오자 체육관은 또다시 분주한 움직임이 계속됐다. 출근하기 위해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주민들도 꽤 됐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피하는 인원이 몰리며 오히려 더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김진희(38·흥해읍 마산리·여)씨는 “어린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여진 때문에 더는 있을 수가 없어 날이 밝자마자 대피소를 찾았다”며 “얼마나 대피소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 폐허가 된 지진 현장

“경주지진도 지금 일년넘게 여진이 계속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피해가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지진발생 이 틀째인 16일 오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동해대로 1463번길 33-2번지 주민 백우진(51)씨는 하루만에 달라진 집을 보며 허탈감을 내비쳤다. 어제만 해도 금만 가 있었던 외벽이 밤사이 여진으로 형체도 없이 무너져 내린 것. 백씨의 부친이 거주하는 1층 집 내부는 떨어진 집기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고, 건물을 빙 둘러가며 가로로 발생한 균열은 누가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2층 건물은 더욱 상황이 심각했다. 통째로 일부 벽과 지붕이 날아가며 완파된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

백씨는 “1층에 계시던 아버지는 흥해실내체육관으로 대피한 상태고, 내방으로 쓰던 2층 집은 아예 폐허가 됐다”며 “여진이 계속된다면 집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허탈감을 내비쳤다.

백씨의 바로 앞집에 거주하는 이재동(68)씨도 상황이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한 군데 멀쩡한 곳 없이 온 집에 균열이 발생했고 무너진 담벼락부터 지붕까지 피해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지만, 앞으로의 일이 더욱 걱정인 상황이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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