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
▲ 배개화 단국대 교수

문재인 정부가 정부기관과 대기업 등에 블라인드 채용을 요구하자 많은 정부기관들이 이번 하반기부터 신입사원 채용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블라인드 채용은 이력서에 사진, 학교, 학점, 어학성적 등 소위 말하는 `스펙`을 기재하지 않고, 지원자들의 개성과 인성, 역량, 가치관 등을 토대로 공정하게 평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블라인드 채용은 실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여러 가지 혼란이 있는 것 같다.

필자는 블라인드 채용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지원자의 외모를 보지 않고 뽑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머니투데이가 인용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사담당자가 면접에서 첫인상을 고려하는 비율은 86%로 “피면접자의 외모가 취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또한 한 취업포털이 취업준비생 1천1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5%가 “면접을 위해 외모를 관리한다”고 답했다.

특히 블라인드 채용에서는 출신학교나 학점, 그리고 스펙을 보지 않기 때문에 면접에서 외모가 수려해야 인사담당자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서 취업 준비생들이 외모에 오히려 더 신경쓰고 있다고 한다. 업무 능력 외의 것을 보지 않겠다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가 `눈에 보이는 요소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왜곡된 믿음을 취업 준비생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정부의 정책발표에 따라, 현재 전국 332개 공공기관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중이다. 민간기업의 경우도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4일 209개사를 대상으로 올해 채용 계획을 설문한 결과, 62개사(약 30%)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작년 11월 입사지원서에 사진을 부착하거나 신체 조건을 기재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입사 원서에 개인의 외모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회사들이 있다. 필자는 주말 평소 알고 지내던 20대 후반 여성의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유명한 닭고기 회사의 입사 원서를 살펴본 일이 있었다. 이 입사원서는 지원자의 사진뿐만 아니라 키, 몸무게 등을 적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지인은 업무와 관련 없는 키, 몸무게를 왜 적으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입사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재작년 보스턴에서 은행 계좌를 개설할 때의 일이 생각났다. 미국 은행은 현금을 바꿔주는 직원과 은행 계좌 개설, 폐지 그리고 금융 상품 가입 등을 도와주고 상담해주는 직원이 구분되어 있다. 필자가 은행에 갔을 때 남자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은행 계좌를 열었는데, 그 직원의 외모를 보는 순간 “아, 미국 은행은 외모를 보고 뽑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한국이라면 은행에서 그런 외모의 직원은 절대로 볼일이 없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지금까지 취업 시즌 때마다 논란이 되었던 것이 능력이 아니라 외모를 보고 뽑는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의 경우 외모가 최고의 스펙이라고 말해지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블라인드 채용 때문에 취업의 성공여부에 면접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런 이유로 남성 지원자들도 과거 어느 때보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가면 20대의 젊은 남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젊은 남자 손님들은 이마, 입 꼬리 혹은 턱 등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보톡스를 맞기도 하고, 필러 등을 코나 턱 등에 넣는 쁘띠 성형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능력만 보고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취지의 블라인드 채용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취업할 수 있다`는 왜곡된 믿음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취지에 맞게 블라인드 채용이 성공적으로 제도화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