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힘의 정치`와 `국가이익 중심주의`가 냉혹한 국제관계의 본질적 속성임을 강조한다. 모든 국가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은 `국가안보`이며, 이것을 지키는 수단이 바로 국가의 힘, 즉 `국력`이라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은 `정의가 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주의자들은 `힘이 있어야 정의를 지킬 수 있다`고 반박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나는 힘을 통해서 평화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힘의 시대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강력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철저한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그는 도쿄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도 힘에 바탕을 둔 대북압박을 최대한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는데, 일본의 아베 수상도 역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일본의 대미외교가 굴욕적이었다고 비난 받을 정도로 아베는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자이다.

이에 반해 한미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의 내용은 그동안 우려되어 왔던 북핵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견해 차이를 봉합하고 한미결속을 재확인한 것이었는데, 미일공동회견에 비하면 대북압박의 강도는 약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일본과 한국의 전략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도자의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와 아베는 현실주의자이지만 문 대통령은 이상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미 양국의 정치지도자가 북핵문제를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는 대북제재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은 국가적 추구가치와 개인적 추구가치가 충돌될 때 자신의 정치성향과는 관계없이 국가적 가치를 우선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균형외교` 역시 이상주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북한의 핵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약하다. 이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집권초기에 추진하다가 포기한 `동북아균형자론`을 연상케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강화도 필요하지만, 이로 인해 한미동맹관계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여 억제력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과 북한에 대한 유엔제재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외교가 결코 균형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의 모호한 외교노선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불신을 키울 수 있는 불필요한 외교적 수사는 우리의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이른바 3불(三不) 발언, 즉 `사드(THAAD)의 추가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체제 참여`등 그 어느 것도 추진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중국만을 의식한 외교적 단견이며,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향후 우리의 국익 추구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명한 외교관은 경우에 따라서는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전략을 구사하여 향후 선택의 가능성을 남겨놓음으로써 협상력을 제고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중국의 사드압박에 굴복하여 동맹국인 미국과는 사전 조율도 없이 미래에 사용할 수 있는 협상카드를 스스로 던져버리고 있으니 `아마추어 외교`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처럼 국가안보전략으로서 이상주의는 바람직한 미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현재의 위기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북한에 악용되거나 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안보위기의 본질은 북한의 핵무장과 이로 인한 북핵 인질이 될 위험성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확고한 현실주의적 안보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