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우·암각화 연구가
‘산 곡간에서 식간수 한다’라고 우리 선조의 생활을 말한 글이 있다.

산의 기슭과 골짜기에서 살면서 골짝 안의 바위틈 어느 즈음에서 나오는 샘물을 마시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정경이다. 산과 더불어 살아가며 산을 좋아하고 산의 품에서 안도하며 산을 안다.

풍수의 기원을 도선(道詵)에서 찾는다. 그러나, 바람을 가누며 물을 얻는 나름의 방법을 강구하였음이 아주 까마득한

시기 때의 일임은 몇몇의 고전과 나라안의 여기 저기를 기웃거려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바위문화 유적들도 곳곳의 산과 들판에 살아 있음을 보았다.

집채만한 바위 한 면을 넌지시 깎아서 웅크린 개를 만들어 놓기도 하였으며, 얼굴을 적당히 새기면서 바위 전체가 하나의 사람형상으로 느끼도록 하였다.

이는 어느 능력 있는 한두 사람의 손길이 이뤄 놓았다고 하기보다는, 세월을 거듭하면서 같은 마음을, 같은 시각을 가진 이들의 손질이 거듭되어 그리 다듬어 지기도 하였다.

높은 풍수에 대한 안목을 가진 이가 비보 의미를 담아 그렇게 한 것도 있다. 이러한 것의 하나가 바로 영주 가흥동의 바위에 있다. 가흥동은 ‘한절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소백산맥이 뻗어 내린 용암산의 언저리 매봉산(273.1m)의 줄기가 죽계천에 맞닿는 구릉의 사이사이에 작은 집들이

들어차면서 마을을 이룬 곳이다.

한절마을은 이곳에 사찰이 있었기에 얻은 이름으로서 그 흔적으로 마애삼존불이 남아있다.

매봉산 한줄기가 뭉퉁히 가라앉았다가 작은 뫼 봉우리로 솟은 곳에는 그 방면으로 유명한 ‘가흥동 바위그림’과 ‘마애

삼존불’이 서로 지척에 있다.

삼존불을 ‘부처당 바위’라 인근에서는 부르고 있다. 삼존불 주위에는 오랜 민간신앙의 흔적으로 작은 민불 형태의 불상 4점을 후대에 덧 새겨 놓았으며 그것들은 세월과 서투른 조각인 탓에 많이 흐려져서 정확한 형체를 알기 어려우니, 다만 공양상·반가사유상의 자태가 비교적 뚜렷하여 그 흔적을 유추할 뿐이다.

아, 작년인가 바위속에서 불상 한 구를 새로이 찾아내었다고 대서특필된 곳이 여기이다.

바위그림은 말하자면 글쓴이의 분류법에 따라 ‘한국식 바위그림’으로 일컬어지는 ‘칠포리 형’의 소멸기에 제작된 그림이다. 농경사회의 풍요주술의 여성신을 형상화한 그림으로서 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그림이다.

여기에서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200여m 가면 마을 내에 정토암(淨土庵) 작은 암자가 있고, 그 오른편의 민가 영주시

가흥1동 조씨 댁 뒤뜰에 3개의 층을 이루는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용바위이다.

매봉산의 한 자락이 낮게 흘러내리는 맥의 끝머리에 해당한다.

마치 계단처럼 3개의 층을 이루는 이곳에 바위구멍 몇 개와 하나의 선각이 괴수의 얼굴을 이루게 새겨 놓았다.

풍수 하는 이에게 듣기를 산의 지맥 흐름을 용이라고 한다. 그 용이 길게 흐르다가 끝난 곳, 구릉의 마지막 부분은 지맥이 모인 혈처라고 한다. 가히 그 지기가 감지되는 듯한 좋은 혈처에 얼굴을 새겨놓았다. 지맥의 흐르는 줄기를 용이라 한다면 이 얼굴, 괴수의 형용은 용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것을 보다 구체화 한 것이 바위에 용의 얼굴을 새긴 것이 되고 산줄기는 용의 긴 몸체가 되었다.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산줄기를 통째 하나의 인공으로 묶어내는 거대한 '대지미술(大地美術)을 선보인 것이다.

대지미술은 물질로서의 예술을 부정하려는 경향과 함께 반문명적인 문화연상이 뒤섞여서 생겨난 미술운동을 말한다.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이하우·암각화 연구가>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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