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살로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말 그대로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분들의 공훈에 대해서 보답을 하고, 나아가 나라의 의미에 대해서 되새기는 달이다.

해마다 6월이 오면 호국보훈의 의미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무슨 거창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호국은 했으되 당국으로부터 보훈의 시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을 말한다.

심정적으로는 호국을 한 것 같은데 그 증거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는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현충일 아침, 반갑고 가슴 뭉클한 기사를 접했다.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현장에서 빛 바랜 사진이 유해와 함께 발견되었다.

똑 같은 사진을 53년 동안 지녀왔던 동생은 그 동안 생사를 몰랐던 형과(비록 유해이긴 하지만) 감격적인 상봉을 할 수 있었다는 기사였다. 학도병으로 자원해 낯선 전선으로 떠났던 핏줄을 반평생 동안 기다렸을 가족들의 고통과 회한이 눈앞에 선하게 다가온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나마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그들은 행운에 속한다.

내 종고모에게도 6. 25전쟁 때 행방불명이 된 오빠가 한 분 있다. 고모의 주장에 따르면 그 오빠는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했다고 했다. 다른 얘기로는 인민군에 끌려갔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한국전쟁 중에 전장에 투입되었고 소식이 끊겼다는 것이다.

종고모는 조실부모하는 바람에 혈육이라곤 달랑 그 오빠뿐이었는데 오빠마저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자 그 생활이란 게 지난하기 그지없었다. 운이 없었는지 남편마저 사별하고 두 자식을 기르면서 많은 고생을 하신 분이었다. 의지할 부모형제 없이 반평생을 지내오면서, 소식 없는 오빠와 세상에 대해 신세 한탄을 하는 종고모를 우리는 보아왔다. 그 때마다 가슴이 아팠지만 별 도움이 되어 드리진 못했다.

자원 입대했다면 근거가 남아있지 않을까 해서 고모는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어디에도 기록상 증거는 없었다고 했다. 팔십년대 한참 이산가족 찾기로 온 국민의 눈물샘이 마를 날 없을 때 고모는 혹시나 오빠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텔레비전을 시청했고, 직접 방송사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고 들었다. 할머니가 다 된 요즘까지도 종고모는 당신 오빠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종고모 같은 분들은 평생 가슴속에 한을 품고 살아간다. 아직도 고모는 당신 오빠가 학도병에 자원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종고모 같은 분들은 오히려 호국보훈의 달이 원망스러운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확실한 증거만이 진실은 아닐 터 그들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 호국보훈의 달이 되었으면 한다. 제도적, 법적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더라도 그들의 상처를 보듬는 계기는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분명 게 중에는 호국은 했으되, 보훈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호국의 명예는 이름나고 증명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흔적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무명씨들 덕분에 우리의 반만년 역사가 진행되어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당국에서는 현충일 추념식이다, 선열묘지 참배다, 6.25 자유수호전쟁54주년 행사다 해서 각종 기념식들을 성대하게 벌인다. 또한 유족에 대한 예우강화를 들먹이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고, 말로 전달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직도 구제 받지 못한 수많은 호국영령들과 그 가족이 주변에 함께 하고 있음을 우리는 6월이 가기 전에 되새길 필요가 있다.

    윤희정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