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지난주 당 제명 사태를 보면서 이 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적인 종말은 반복되는 듯하다. 해방 이후 대통령제 하에서 우리는 10명의 대통령을 배출하였으나 아직도 국민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대통령은 없는 듯하다.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았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3·15 부정 선거와 4·19 학생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는 하와이로 망명하여 외로운 임종을 맞이하였다.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근대화의 신화를 창출한 박정희 대통령도 종말은 더욱 비극적이었다. 그는 유신 독재 반대 시위가 계속되는 와중에서 최측근 부하로부터 시해당했다. 1979년 10·26 이후 등장한 신군부 전두환 대통령은 6천억원이 넘는 비자금 조성으로 수형 생활 이후 전직 대통령의 예우까지 박탈당하고 아직도 추징금을 납부하는 중이다.

이러한 역대 대통령의 비극은 1987년 민중항쟁과 직선제 개헌 쟁취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노태우 직선 대통령도 결국 5천억원의 비자금 스캔들로 구속되었고 대통령의 명예는 여지없이 추락되었다. 김영삼 대통령 역시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청산 등 화려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뇌물사건으로 명예는 여지없이 실추되었다.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도 자녀의 부패로 그의 이미지는 반감되고 말았다. 참여 정부의 노무현 대통령도 퇴임 후 친인척 비리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중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개인 재산문제, 사이버 사령부 정치 개입 의혹 등으로 언제 검찰조사를 받을지 모르는 입장이 되었다.

흔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 한다. 그러나 우리 역대 대통령의 비극은 먼지에 비교할 수 없는 권력형 부패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로 인해 헌정 70년사에서 탄생한 10명의 대통령은 존경은커녕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역대 대통령의 평가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정파적 관점에 따라 입장을 달리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국민이 존경할 만한 대통령이 없는데 문제가 있다. 세계 어딜 가나 존경받는 국가 지도자는 있기 마련인데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그 근저에는 대통령의 권력 집중과 독점에 대한 견제 장치가 마련되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 대통령 권력의 독점과 부패는 제도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우리의 정치 풍토나 문화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간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대통령 단임제라는 장치까지 마련해 보았다. 또한 민주 정치의 상징인 여야 간의 정권 교체까지 경험해 보았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력집중과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는 마련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대통령의 권력은 절대화되고, 절대 권력은 부패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당파적인 정치 문화는 이를 더욱 악화 조장시켰다. 정당의 극한적 대립과 의회 정치의 파행은 대통령의 패권정치를 더욱 강화시켰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자각과 도덕성만으로 권력은 제어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대통령의 비극적 종말을 막기 위해서 여야는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헌법 개정의 방향도 대통령의 거대 권한을 막는 장치를 마련하는데 있다. 그러나 그렇게 요란하던 개헌 논의는 정치적 이슈에서 멀어지고 국회의 개헌 특위는 개점휴업 상태이다. 현 시점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자신은 정직하고 성실한 대통령의 직무만을 수행할 것을 다짐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권력은 개인의 선의만으로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확정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여야는 역대 대통령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견제하는 장치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