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와룡면 서지리의 서낭탑. 왼쪽에서부터 삼첩석과 이첩석, 그리고 누석단.
안동은 성주풀이의 본향이다. 시월이면 길일을 택해 대청마루 위쪽 안방 문 위에 모셔둔 성주께 가족의 안녕을 위해 기원한다. 안택굿이라고도 한다.

이제는 희미한 기억이지만, 생전의 어머니께서 명절날 아침, 작은 제상을 마련하여 성주님께 집안의 평안함을 빌던 모습이 기억 한 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 성주풀이의 무대가 저전마을에서 안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제비원'이다.

"어머님의 마음이예요"

고청(古靑)선생의 말이다. 평소 바위문화에 대한 글쓴이의 물음에 대해 하신 말씀이다. 너무 당연한 말씀이라 와 닿지 않던 그 말이, 시간이 흐르고 한참 지나 이제야 글쓴이에게 애절하게 와 닿는, 그런 말로 되었다. 그와 같은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소리가 성주풀이라면, 바위문화로 대신하면 안동 와룡면 서지리 돌탑으로 등장한다.

안동에서 안막동을 막 지나서 도산서원 가는 길을 따라 한 5㎞가면 지름당 고개가 있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마을이 서지리이다.

서가현촌(西可峴村)이라 하기도 하며 서갓·서간마을이라고도 한다.

이십여 호의 작은 마을은 마치 손안에 앉은 것 같고, 서낭당은 바로 오른편을 감싸는 산줄기의 끝에 있다. 과거 지름당 고개로 퇴계로가 생기기 전에는 서낭당 앞이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였음 직하다.

그 산자락 끝은 바로 기가 응축된 곳이 되며 거기에 서낭을 꾸며 두었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런 유형의 바위문화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었다. 안동 문화원의 '지정문화재편람'에 이르길, '건립연대는 미상이나 고대 거석문화의 흔적이라 추정된다. 서갓마을 입구에 위치하는 이 첩석과 누석단은 마을의 안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세운 동사로서, 지금까지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서갓마을의 동사(상당집)는 지금부터 40여 년 전까지도 정월 열 나흗날 밤에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고 하였다. 이 글에서는 흔히 부르는 '돌탑'대신에 '누석단(累石壇)'이라 하고, 이형의 탑을 '첩석(疊石)'으로 작명하였다. 고심해서 설명코자 하였으나 너무 어려워져 버렸다.

3개의 자연석을 쌓아둔 탑을 삼첩석(三疊石)이라 하였고 두 개의 돌을 쌓은 것을 이첩석(二疊石)이라 하였다.

이것들은 마을의 안녕을 주관하는 공동 제신이 좌정하고 있는 성소(聖所)로 신앙되고 있다고도 한다. 덧붙이기를 삼첩석과 이첩석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거석문화 유적으로 추정하며 후대에 와서 마을의 허한 곳을 인위적으로 보강하여 비보적 성격을 추가 시켰다고도 하였다. 따라서 이 유적을 한국 선사시대 문화와 후대 민간신앙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서 고고학과 민속학의 귀중한 자료라는 것을 이곳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은 밝히고 있다.

사실 누석단이라 하는 것은 경상도에서는 새마을 운동이다 농촌 근대화다 해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특히, 민속학 자료의 경우 변변한 것이 눈 씻고 봐도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 되 버렸다.

경상도 북부지방으로 가면, 특히 안동이나 영주를 잇는 논둑이나 밭둑 가에는 저절로 둥글게 다듬어진 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돌을 옮겨 이첩 석을 쌓았고, 돌을 마치 사과 쪼개듯 하여 2층과 3층을 올린 것이 삼첩석이다.

이들 중 백미가 삼첩석이다. 규모도 크고 형상 또한 아름답다. 1,2,3층이 약 40%의 체감 비를 갖고 있으며 전체높이 300㎝의 당당한 3층 돌탑이다.

안동은 전 탑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북후면 석탑리나 의성 안평면 석탑리의 '피라밑'형 다층 적석탑은 이형 탑으로서 그 중요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 유형이나 연대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러한 축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탑이 서지리 서낭 탑이다. 이 탑 역시 거석문화의 범주에 넣어 모자랄 것 없는 훌륭한 자료이다.

<이하우·암각화 연구가>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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