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문명의 이기가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전자제품의 등장은 오히려 인간 두뇌의 사칙연산 기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 간단한 덧셈마저도 계산기부터 찾는 인간의 행동양태가 이를 증명한다. 스마트폰의 발달은 전화번호를 외우는 기능부터 퇴화시켰다. 장구한 세월 사랑받던 주판(珠板)이나 암산법은 이제 박물관 진열장 속으로 들어갔다.

정계개편론이 무성하다, 바른정당이 쪼개져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고, 국민의당도 흔들리고 있다. 미구에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한다. 5당 구조가 깨어질 것이라는 예상에서부터 결국 보수 대 진보의 1대1구도로 재편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나온다. 바야흐로 정치인들의 계산기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각자의 입지가 유리해질 방향을 찾아내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을 것이다.

5대 정당의 성향을 구성원들의 이미지로 단순분석하면 이렇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다수의 진보와 소수의 중도로 구성된다. 자유한국당은 다수의 보수와 소수의 중도가 섞여 있다. 국민의당은 진보와 중도가 반반 쯤 되지만 호남이 기반이라는 점에서 진보가 조금 더 강하다. 보수와 중도가 반반 정도이던 바른정당은 중도 쪽만 남았다. 정의당은 자임하듯이 진보정당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처럼 이념적 스펙트럼으로서의 명징한 정당구조가 아닌 까닭에 다당제라고 하지만 사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나뉜 변태적 이합집산(離合集散)일 따름이다. 바른정당의 균열도, 국민의당의 내부지진도 결국은 이 불안정 구조에 기인한다. 혁신방안으로 `정계개편`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념적 성향대로의 `헤쳐모여`를 가로막고 있는 강력한 요소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정당이 갖고 있는 `지역성`이다. 시나브로 튀어나오는 `전국정당화`란 구호는 `세력 확장`의 욕심표명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역성을 갖지 못하는 정당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의 당락에 어떤 깃발이 유리한지에 대해서만 골몰한다. 정치거목들과의 사사로운 인연이 정당선택의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 출신지역 때문에 발이 묶인 정치인들은 수두룩하다.

민심은 여전히 다당제를 선호한다. 지난 11월초 문화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서 바람직한 정당 구조를 묻는 질문에 무려 65.0%의 응답자가 `다당제`라고 답했다. `양당제`를 꼽은 비율은 29.4%에 불과했다. 한국당 지지층 가운데서 48.7%가 양당제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것이 이채롭다.

다수의 민심은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인들 셈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지금까지 그랬듯이 정치권의 재편 논쟁은 정치인들의 계산기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당구조에 대해 가장 고민이 큰 쪽은 문재인 대통령이어야 맞다. 현재의 정당구도는 의회권력과 행정부 권력의 이원적 정통성이 충돌하는 여소야대의 부정적 요소가 극명하게 노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느긋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한다. 바로 국민들의 굳건한 지지율이다. 소속은 다르지만 국민의당 쪽 호남정치인들이 문재인정권의 곤경을 끝내 외면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도 있다. 결정적인 실정이 나오지 않는 조건에서 문 대통령의 치세에 내응할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대변수인 문 대통령이 `헤쳐모여`를 서둘러 외칠 이유란 당분간 없어 보인다.

민심이라는 예측불허의 변수가 상존하는 한 정치인들의 계산기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1+1이 꼭 2가 되란 법이 없다. 보수를 뭉쳤다가 결집된 진보에 당하거나, 진보의 뭉침이 보수의 집결을 초래한 사례는 많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계산기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계산기가 만들어내는 연산이 적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진정 국민을 위한 `정계개편`이 아닌 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