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좌오향(子坐午向)인데”

함께 한 조용헌(오백년 내력의 명가이야기 저자)의 말대로 높직한 바위 더미 위에서 남쪽을 보고 있는 거대한 바위가 거북등판 모양으로 엎드려 있다.

이곳은 평지에서 높직하게 올라 있으며 산자락의 끝이다. 그 앞으로 물길이 있고, 20m여 즈음에 다른 골짜기에서 오는 개울과 합치는 합수부가 있어서 산진수회에 딱 맞는 땅이다. 치성소의 구색이다. 널찍한 바위는 일대를 굽어보고 있는 형국으로 얹혀있으니, 그 남쪽을 향한 바위 면의 한가운데에 바위구멍을 새겼다.

이 바위가 거북바위이면 그 바위구멍은 거북의 입으로 조영된 것이다.

바로 아래의 개울가에도 검은빛의 둥글넓적한 바위가 있다.

어지러이 갈아낸 흔적과 작은 바위구멍이 있다.

분명한 기원의 흔적이다. 갈아낸 흔적이 깊으니 영성(靈性)이 움직여서 감응이 있었으리라.

거북은 개울을 향해 가고 있는 자세다.

고개를 오른 쪽으로 약간 틀고있는 모양이 이제 막 물로 뛰어드는 거북이라도 좋고 자라라 해도 좋을 그런 바위이다.

거북에게 뭔가를 간구 했다면 그것은 부귀와 장수를 빈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이 양성(兩性)을 지녔다고 봤으면 옥동자 일 수도 있겠다. 조용헌 왈.

“영성은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본 사람의 의지에 따른다는 말이다.

가야마을과 모시밭 골의 경계가 되는 작은 다리 아래, 논에 있는 거북바위는 귀엽고 앙증맞다. 마치 고래의 몸처럼 유선형의 늘씬한 바위 앞에 보다 작은 둥근 돌을 갖다 놓아서 한 마리의 거북임을 형용한다. 두 마리는 앞뒤에 나란히 배치되었다. 큰놈은 5미터 여, 작은 것은 머리가 분실되면서 거북의 형상을 잃어 버렸다.

만약 일부러 그리 하였다면 뒤따르는 거북은 물 속에 머리를 박고 있다고 생각하면 잃어버린 형체에 대한 위안이 된다.

등에는 역시 갈아둔 자국이 남아서 기원의 흔적으로 있다.

여름이면 이 논은 벼와 물로 가득 찬다. 바람이라도 건 듯 불면 그 푸른 해원(海苑)을 스쳐 지나는 거북 두 마리.

그러한 상상으로 바위문화의 탐사는 절로 즐겁다.

옆으로 제법 깊은 개울 바닥으로 물이 흐른다.

다섯 번째 거북바위가 폐교된 구 ‘학남초등학교’의 뒤란에 있다.

폐교이전, 어린아이들 속에서 행복하던 것이 이제는 홀로, 퇴락한 학교의 뒤뜰을 지키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여기서 안정하였다. 얼마나 더 많은, 바위의 꿈을 가진 아이들이 자라서 이곳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런 추억을 잔 등에 얹은 채 바위는 여전히 그렇게 있다.

“이 구영에 물을 찍어 바리만 귓벼이 났는다 그이께네”

“이 구멍의 물이 귓병을 낳는다 이 말씀이죠?”

“야아!”

어느 사이 마을 어른 한 분이 수상쩍어 하며 다가 오셨고, 그분의 말씀이 있었다.

검고 평평한 바위를 몸체로 삼고 앞부분에 긴 돌을 세워 머리를 만들었다. 그 목의 한 부분에 조그마한 둥근 구멍이 나 있는데, 거기에 옛날에는 물이 고였다고 한다. 그 물이 귓병에는 특효약이었다는 말씀이다. 약이 귀하던 시절, 민간에서 비방을 구하다가 보니 별 게 다 약이 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바위는 장수하는 거북이고 그 구멍은 귀에 해당되니, 병 없는 거북의 귀에 고인 물이라 사람의 귓병도 낳게 할거라고 믿었던 결과이다.

노인도 거북바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이하우·암각화 연구가>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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