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 있었던 지난 8일, 국회의사당 일대는 혼란속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놓고, 찬성과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뒤섞여 북새통으로 변한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중당 등 220여 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노(NO)트럼프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오전 10시부터 국회 앞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중교통수단인 버스가 다니는 국회앞 대로를 점거한 채 진행된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1천명(경찰 추산 600명)이 참가했다. 집회 참가자들의 손에는 `NO 트럼프, NO WAR! 전쟁 미치광이 트럼프는 국회에서 물러가라`는 글귀가 쓰인 피켓이 들려있었다. 공동행동 측은 “트럼프 국회 연설은 이 나라 국민에 대한 모욕이자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자들의 기를 높이는 결과만을 낳는, 어리석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 그지 없는 일”이라며 “북한 핵을 향한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가 천명됐고, 심지어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북한과 교역 및 사업을 모두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을 뿐 아니라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발표에 아연실색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공동행동 측은 트럼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에 소금을 뿌린 뒤 이를 찢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또 한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환영, 한·미 동맹 강화`를 주장하는 대한애국당 당원들의 가두시위가 펼쳐졌다. 주최측 추산 1만5천명(경찰 추산 8천명)의 일부 참가자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양손에 들었고, 또 다른 참가자들은 `환영, 트럼프 웰컴` `한미동맹강화로 전쟁억지`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트럼프 대통령 환영을 외쳤다.

완전히 정반대 주장을 펴는 두 집회 참가자들이 함께 모이다보니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대한애국당 소속 보수단체 회원들이 국회방면으로 이동하며 공동행동 측 집회 진영으로 진입하면서 양측 간 충돌이 빚어졌다. 서로 밀고 밀리며 힘겨루기를 펼치던 집회 참가자들은 감정이 격해지자 욕설과 함께 폭력사태로 이어졌다. 대한애국당 당원으로 보이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한 노인이 “이 나쁜 놈들아! 한미동맹 강화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짓거리냐”라고 질타했다. 말이 떨어지자말자 피켓을 든채 시위중이던 한 노인이 “무슨 소리냐! 당신들이 제 정신이 아닌게지. 한반도 위기를 이용해 전쟁무기나 팔아먹는 트럼프 대통령이 뭐가 좋다고 그러냐”고 맞받았다. 그러자“순 빨갱이 같은 놈들이네”라며 욕설을 퍼부었고, 옆에 서있던 민중당 집회 참가자들도“나라 팔아먹는 매국노 같은 인간들이네”라고 고함을 치며 몸싸움이 붙었다. 그 와중에 들고있던 피켓 막대기가 날아가고, 주먹이 날아다녔다. 현장에서 서울에 사는 김모(56)씨는 대한애국당 회원에게 막대기로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가 경찰 구급대의 치료를 받고 귀가하기도 했다. 몸싸움과 욕설을 지나 주먹질과 발길질이 오가는 험악한 상황이 연출되자 경찰이 즉각 투입돼 양측을 분리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충돌이 끝나고 소강상태가 된 후 한참동안 시위 현장에서는 확성기로 목청높여 외치던 시위 주동자들의 목소리가 지하철 역을 찾는 시민들의 귀를 따갑게 만들고 있었다. 북한의 핵·미사일도발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한국을 방문한 동맹국 미국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하는 날, 국회 앞마당에서 이처럼 질퍽한 욕설로 맞이할 이유가 있는 걸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두 집회 참가자들이 서로를 증오어린 시선과 말투로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생각이 다르다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옳지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저 생각이 다를 뿐 생각이 틀렸다고 비난해선 안 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도 경청하고, 존중하며 다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