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조선 전기 문인인 이륙(1438~1498)은 그의 `청파집`에 `의견설(義犬說)`을 싣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들여다보면 선생이 집에서 기르던 흰 개가 주인의 뜻을 잘 알아차리며 다른 어미가 새끼를 낳고 죽자 그 새끼들을 데려다 힘들게 젖을 먹여가며 잘 키워 신통하다는 줄거리다. 가축인 개는 주인과 객을 분별할 줄 알고 어미와 새끼를 구별할 줄 알아 그 성품이 가장 지혜로우니 개 중에서도 의로운 녀석이라는 것이다. 지금 세상의 처들이 남편의 전실 자식을 남 보듯이 하고 심한 경우에는 원수처럼 여겨 사납게 물어뜯기를 짐승처럼 하니 이들이 이 의견의 소문을 듣는다면 어찌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의견설`을 짓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개가 지닌 도적지능과 인간이 지닌 도덕지능은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인간의 도덕지능은 스스로의 학습을 통해서 고도화되는 것에서 당연히 동물과의 차이점이 있다. 유아기에 몰랐던 도덕규범은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넓게는 사회집단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익히고 배우게 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천륜이나 인륜을 무너뜨리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인간 이하의 짓을 할 때는 대개 `짐승만도 못한` 또는 `개만도 못한`이라고 그 행위자체를 비하한다.

진화생물학자인 마크 베코프 교수는 개나 늑대에게도 도적지능(Moral intelligence)이 있다고 연구에서 밝혔다. 이는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이 단체 규범을 따르지 않을 경우 도태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으며 `개는 사리분별력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친구를 사귀거나 원한을 품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사람처럼 당황하거나 웃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계모의 악행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전래동화인 콩쥐팥쥐와 고전소설 장화홍련전과 서양의 신데렐라와 백설공주가 있다. 이 외에도 동양고전인 `맹자`에도 순임금의 계모가 자신의 친아들과 공모하여 순임금을 죽이려고 수차례 기도했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모가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일은 늘 이야기의 단골 소재가 되어 왔던 것 같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유난히 계모에게만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는 원인은 지난 전통사회에서는 자녀 양육은 오직 여성 몫이며 남성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로부터 큰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모계사회의 의식구조와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적 사고에 따른 편견이 배어 있다고 생각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정말로 `개만도 못한 사람`의 군상들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도덕지능은 우리가 가까이하는 개의 도적지능만큼도 안 되는 것이다. 이혼율이 나날이 높아지는 오늘날의 사회는 친부모의 손에서 자라지 못하고 조부모나 재혼한 부모에게서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계모 계부 구분 없이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현실이며 더 큰 문제는 들추어지지 않고 있는 학대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500년 전의 조선 초 이륙 선생의 `의로운 개`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 조선에도 계모가 의붓자식을 미워하는 일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미 잃은 새끼들을 제 새끼처럼 젖을 먹여 키운 의로운 개를 보고 그런 계모들이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기를 바라서 윗글을 짓는다고 밝혀 놓은 것을 보면 `개보다 못한 인간`들에게 주는 교훈은 크다고 보겠다.

어른들의 폭력에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건이 터지면 임기응변식 방안을 내놓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검토를 통해 사회 안전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국민 공감대가 형성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어른들의 폭력과 학대에 더 이상 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지금부터라도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요즘은 뉴스를 대하기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