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식<br /><br />문화특집부장
▲ 홍성식 문화특집부장

혼자서 식사를 해결하는 `혼밥족`, 친구나 선후배와 함께 마시지 않고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혼술족` 등이 21세기를 규정하는 신조어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난 시대와 달리 21세기형 혼밥족과 혼술족은 더불어 먹거나 마실 사람이 없어 `나홀로`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홀로 먹고 마시는 행위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고 여유 있게 삶을 살겠다는 지향을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최근에는 이런 추세가 보다 구체화된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욜로의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겐 “미래를 위해 현재가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라”는 부모 세대의 충고는 받아들이기 힘든 잔소리다.

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레 직장이 생기고, 그 직장에서 정년을 보장받으며 10년쯤 부지런히 일하고 저축해 집을 살 수 있던 시대는 오랜 전 기억이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청년실업률과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은 젊은이들을 절망과 비탄에 빠뜨리고 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겠다. 삶은 한 번뿐이니 현재를 즐기겠다”는 욜로족들의 선언은 청년세대가 벼랑 끝에서 선택한 궁여지책일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욜로족들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월셋집에 살면서도 방과 거실을 예쁘게 꾸민다. 또한, 건강한 음식이 아닌 맛있는 음식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남이 아닌 나의 행복을 지향하고, 미래가 아닌 현재에 투자하는 건 욜로족의 특징이다.

기업들도 증가하는 욜로족을 겨냥한 상품을 줄지어 내놓고 있다. 레스토랑엔 혼자서 즐기는 고가의 식사 메뉴가 등장하고, 욜로족의 소비 패턴에 맞춘 신용카드도 생겼다. `색다른 경험`과 `자신을 위한 투자`를 중시하는 이들의 취향을 파악한 `체험·테마형 가전제품 매장`과 `유기농식품 매장`도 증가 추세다.

혼술과 혼밥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욜로족들은 여행도 혼자 떠나는 경우가 많다. 여행사들은 이런 욜로형 나홀로 여행자를 잡기 위해 출발이 임박한 항공권과 다양한 숙박권을 인터넷을 통해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여행의 패러다임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기자는 `나홀로 여행자`가 돼 제주도를 돌아봤다. 욜로의 삶을 지향하는 나홀로 여행자는 비단 20~30대 젊은층만이 아니었다. 40대, 더 나아가 50대 남녀들도 익숙한 듯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에서 가족 단위 여행자들 사이에 앉아 당당하게 `1인 메뉴`를 주문했고, 렌터카 없이 버스를 갈아타며 성산일출봉에서 협재해수욕장, 서귀포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를 음악이나 책을 친구 삼아 거침없이 오갔다.

제주공항에서 만난 관광안내원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교통 인프라도 좋아지고 있고, 음식점이나 카페에도 1인용 좌석이 늘어나고 있다”며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태국에서 제주를 찾는 나홀로 여행자가 적지 않다”고 했다.

나홀로 여행자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사람살이의 따스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적이 드문 대평항 버스정거장에서 만난 80대 할머니는 생전 처음 보는 기자에게 “생선을 구워줄 테니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가라”고 청했다. 일정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더니,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먹으려던 감 하나를 기어이 손에 쥐어주던 주름진 얼굴. 떠나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던 그분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부에선 “자기애와 이기심에 빠지는 게 아닐까”라며 욜로족과 나홀로족을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눠줄 수 있는 대평항 할머니처럼 나이 먹어갈 수 있다면 `홀로 인생을 즐기며 산다는 것`이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