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말이 많을수록 자주 궁색해지니 속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多言數窮 不如守中)`는 말이 있다. 도덕경 제5장에 나온다. 노자(子)는 제23장에서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希言自然)`고 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장에 걸쳐 `말이 많은 것(多言)`을 경계했다. 일상생활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적격성에 대한 정치적 논란 파장이 깊다.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불법여부의 기준으로만 보면 중대한 하자로 분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과거의 여러 말과 글들은 합법·불법 차원을 뛰어넘는 중대한 이중성의 문제점을 노정한다.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정책본부 부본부장으로 있을 적에 홍 후보자는 “입시기관이 돼버린 특목고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작 자신의 딸이 학비가 연 1천500만원에 달하는 청심국제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1998년 홍 후보자가 발간한 저서`삼수·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라`(미래와 사람들)는 학벌주의의 진수를 보여준다. 연세대학교 출신인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들은 세계의 천재와 경쟁해나갈 수 있는 근본적인 소양이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런 해괴한 조언을 펼치기도 한다. “농구공만 던지면서 스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며, 대부분의 경우 `거렁뱅이`가 되기 십상이다.”

2007년 11월 그가 김상조·유종일과 함께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한국경제 새판 짜기`(미들하우스)에서는 노무현정부에 대해 맹비판을 퍼붓는다. “노무현 정부는 조만간 끝나지만 이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관련한) 공범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또 있다. 2001년에 낸 책 `한국은 망한다`(이슈투데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후에 부패방지를 위해 남긴 성과는 거의 없다”고 썼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을 꿈꾸는 홍 후보자는 지난 2009년 지상파의 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이런 놀라운 말을 한다. “가장 지속가능하고 가장 좋은 일자리가 대기업 일자리거든요. 대기업에 가서 거기서 직장생활하는 것이 가장 훈련을 많이 하고 좋은 일자리입니다.” 하지만 그는 화려하게 변신한다.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2012년을 기점으로 진보·좌파진영을 옹호하는 수려한 논리들을 잇달아 펼쳐 내놓는다.

그나마나, 홍 후보자의 자격논란과 관련한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언급은 정말 어이가 없다. 그는 `특목고` 문제와 관련한 표리부동 논란에 대해 “제도적으로 고치자는 것이지, 딸이 국제중을 갔다고 도덕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두둔했다. 그러면서 “그럼 여러분(기자)도 쓰신 기사대로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단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인사실패 논란으로 이미 여러 차례 곤욕을 치른 청와대의 절박한 심사는 이해가 간다. 아무리 그래도 `겸양`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취재기자들에게까지 `너희들은 기사대로 살고 있느냐`고 공박하는 오만한 태도는 참으로 소화하기가 버겁다. 홍 후보자는 국회 청문위원들이 요구한 자료도 일체 내놓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국민정서`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청문회는 청문회고 임명은 임명이니 눈 감고 귀 막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버티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랍비(유대교 율법교사)가 제자들에게 상자를 두 개 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담아오라고 했더니 두 상자 다 혀를 가득 담아 왔다던가. 이쯤 되면 `다언삭궁(多言數窮)`의 덫에 걸려든 사람들은 혀를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낭패감에 빠져 있어야 옳다. 이런 짐작마저도 순진한 착각이라면 참 씁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