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바위확. 물이 담길 수 있는 동이형의 바위구멍이다.
바위를 말하고자 하니 자주 등장하는 현상이 바위구멍이다.

오늘은 바위구멍에 관하여 우리의 이해의 폭을 넓히기로 하자.

우리 나라에서 조사된 일반적인 바위구멍은 대략 10여㎝ 전후이다. 큰 것은 이 이상을 넘고, 작은 것은 4~6cm에서 더 작게는 1cm의 지름을 한 것도 있다. 그러나 큰 것의 경우, 지름이 20~30㎝여 정도에서 드물게 약 100여㎝ 이상의 그것도 분포하고 있다. 이런 것까지 바위구멍으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여러 연구자가 호칭에 고민한다.

바위구멍을 두고 민간신앙을 연구하는 이들은 작은 것을 ‘알터’라 이르고 비교적 큰 것은 ‘용알 터’라 부르기도 한다.

그것이 남근형의, 삐죽하게 솟은 바위주변에 있으면 ‘여근공(女根孔)’이라고도 하였다. ‘민학회’ 같은 모임에서 펴낸 책에서는, 작은 것은 ‘알터’ 비교적 큰 것은 물동이라는 말에서 따와 ‘동이’라 이르고, 이보다 큰 것을 일러 ‘드무’라고 불렀다.

‘알터’라는 말은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온 용어이다. 기층문화권의 신앙형태로 기자신앙(祈子信仰)과 칠성신앙을 포함한 용어이다. 성혈(性穴)로 불려 지기도 한다. 성혈이라는 용어속에는 여성적 상징에서 따 온 것이다. 그러나 바위구멍 속에 스민 뜻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기에 최근에는 피하는 경향이다. 컵 마크(Cup-Mark)로 번역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바위구멍은 그것이 처한 입지나 구성, 용도가 하나의 명칭으로 이름하기에는 공통적이지 아니한 성격이 두드러지고, 그 기능도 세분화 되야 하므로 보다 광범위한 조사와 연구가 따라 줘야 하기에 요즘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통칭 ‘바위구멍’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 현상이다.

바위구멍에 대한 자료는 여러 연구자들이 낸 것도 있고 글쓴이도 수년간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이다.

바위구멍 역시 암각(岩刻) 양식의 하나이다. 발생에 대해서, 처음엔 그림의 한 부분으로 새겨진 것이라는 설이 한동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이른바 여성형상의 바위그림에서 형상은 소멸되고, 단순화된 부분만 남은 것이 바위구멍이라는 것이다. 일견 타당하게 생각되나 사실, 인간이 할 수 있는 암각 행위에서 가장 단순한 동작이 일정하게 한 부분을 계속 타격 한다던가 오벼내는 행위라는 사실에 주목하였을 때, 오히려 보다 빠른 양식으로 볼 여지가 있다.

바위그림유적이나 그 주변에서 바위구멍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포항 칠포리 형의 ‘한국식 바위그림’에서는 바위구멍이 중요한 그림구성의 요소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바위그림의 일부분으로 발전했다고 하기보다는 같은 선상에 두고 좀더 고려해 볼일이다.

구멍을 찧는다는 행위를 성행위 모방의 주술로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했던 결과로서 바위구멍이 만들어지며, 만들어진 구멍은 주술이 깃 들게 된다. 그 소망만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오래도록 한 구멍만을 그리 했다면 커다랗게 형성됐을 수 도 있다. 이러한 설은 농경에서 풍요를 빌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여성 심벌의 상징을 띠고 농경생산에 따른 종교적 상징성의 표현으로서 생산 풍요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바위구멍이 이런 성격만 있다면 성혈이라 일러도 당연할 것인데, 실지로 수집되는 자료에는 이와 일치되지 않는 것도 많다. 그것이 영일만 일대를 비롯하여 경향각지에서 수집되는 자료들이다. 특히, 우리가 살고있는 영일만 지역의 바위구멍들은 분포가 놀랍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엄정한 사전 계획에 의해 제작됐다는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바위구멍이 조형성을 띠고 일정한 룰(Rule)이나 대·소 구성요소에 맞춰 새겨져 있는 특별한 것이다.

어떤 것은 북두칠성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은 비교적 큰 구멍 주위에 작은 구멍이 둥글게 감싸고 있기도 하고 와상선 형상으로 빙빙 돌아 흐르는 것들도 있다. 개체를 나타낸 듯한 것도 있다.

<이하우·암각화 연구가>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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