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IMF 외환위기에 대한 평가였다. 문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를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을 뒤흔들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표현했다. 벌써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가 매우 건실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 후유증이 국민들의 삶을 바꾸어버렸다는 것이다. 후유증의 사례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저성장과 실업이 구조화 됐고,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이 사라졌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송두리째 흔들린 삶의 기반을 복구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책임에 맡겨졌고,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국민 개개인은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다. 선배 세대들의 좌절은 청년들로 하여금 전문직이나 공공부문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열망하도록 만들었고, 무한경쟁사회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상식과 원칙이 아니더라는 생각도 커졌다. 이렇듯 외환 위기가 바꾸어놓은 사회경제구조가 국민의 삶을 무너뜨렸다고 진단하면서 새 정부의 책무를 보다 민주적인 나라,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것이 바로 `사람중심 경제`다. `사람중심 경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 일자리와 늘어난 가계소득이 내수를 이끌어 성장하는 경제, 혁신창업과 새로운 산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경제다. 이른바 모든 사람, 모든 기업이 공정한 기회와 규칙 속에서 경쟁하는 경제를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축이 바로 일자리와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이전 정부들이 주력해온 수출주도 성장론의 대안적인 성장모델이다. `분수효과`로 대변될 수 있는 소득주도 성장은 노동소득을 늘리고, 분배의 형평성을 제고함으로써 경제의 성장활력을 높이는 정책방향이다. 노동소득을 늘리고, 소득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단순히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성장으로까지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 양극화 심화와 사회경제적 분배·재분배 구조의 왜곡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실현 방안으로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임금인상, 재정지출 확대 등이 제시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전면으로 등장한 데는 수출 주도성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진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내수가 수출과 함께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제고하고,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세 저하를 막기 위해 중요한 과제다. 이미 올해 예산안도 그 기준에 맞춰 짜여졌다.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주는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가계의 기초소득을 늘리고, 생계비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소비나 저축에 여력이 생기도록 하려는 것이다. 주거급여와 교육급여를 인상해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현실화했다. 가계의 의료비 부담을 대폭 줄이고 국가 책임을 높였다. 5세 이하 아동의 아동수당 도입, 노인 기초연금이나 장애인 연금 인상도 같은 맥락이다. 부자와 대기업이 세금을 좀 더 부담하는 방향으로 세법 개정도 추진한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론은 경제의 생산성이나 잠재성장력 등 공급측면을 강조해온 주류 경제학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다보니 아직 검증된 이론은 아니다. 더구나 자영업자가 많고, 시기적으로 한계기업이 폭증한 국내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정책의 실효가 있겠느냐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나 고령화 및 가계부채 급증이 우려된다는 점 등도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유야 어떻든 기대와 우려 속에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진행중인 만큼 무조건 반대만 외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비록 조마조마한 소득주도 성장론이지만 장·단점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부작용은 잡아나가고,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