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첫 시집 `오늘의 냄새` 출간 이병철 시인

▲ “늘 자기갱신을 시도하는 작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병철 시인.
▲ “늘 자기갱신을 시도하는 작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병철 시인.

시 쓰는 행위를 `언어와의 연애`에 비유할 수 있다면, 첫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은 그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져 첫 번째 아이를 낳은 것과 다름없다. 주위 사람들과 독자의 축하가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2014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젊은 시인 이병철(33)이 첫 시집을 냈다. 이름하여 `오늘의 냄새`.

이병철 시인은 드라마틱하고 유쾌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겨울 배낭을 꾸리고 낚싯대를 챙겨 홀로 노르웨이로 떠났다. 이유는 단순했다. `오로라를 보고 싶어서`였다. 얼음 섞인 칼바람이 몰아치는 무인지경의 설원에 텐트를 치고 잤다고 한다. 그 모험심과 용기를 흉내 낼 사람이 많지 않을 듯했다.

이 시인은 시라는 장르에만 얽매이지 않고 문학평론과 칼럼, 여행기까지 종횡한다. `경북매일`과 `경향신문`엔 사회문제를 문화적으로 해석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조선일보`엔 여행기를 싣기도 했다. 열린 태도와 시선을 가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취미가 다양한 그는 어느 날엔 아마추어 야구단의 에이스로 운동장을 뛰고, 또 다른 날 밤엔 쏘가리를 낚으러 남쪽 끝자락 어둠에 잠긴 강으로 차를 몰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자유를 지향하며` 사는 이병철 시인. 시집 `오늘의 냄새`엔 그의 내면풍경과 세계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게 분명했다.

이병철과 그의 첫 시집이 궁금했다. 깊어진 가을,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공원에서 `문학의 가시밭길`에 막 발을 내디딘 `청년작가` 이병철을 만났다.
 

- 첫 시집이다. `활자화 된 첫 번째 자식`을 낳은 격이다. 어떤 심정인가.

“내가 쓴 시가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힌다고 생각하니 은밀한 부분을 내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시를 읽은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 하는 자체만으로 재밌고 신난다. 여기저기 흩어진 자재들을 모아 겨우 집 한 채 지었는데 아무도 안 들어오면 어떡하나 걱정도 된다.”

- `오늘의 냄새`라니, 시집의 제목이 독특하다.

“시는 사유보다 감각의 언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각이나 청각을 이미지화한 시들은 많지만 후각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 가장 예민한 감각임에도. 냄새를 통해 과거의 장면과 당시의 구체적 감정들을 기억해내는, `냄새`라는 라벨을 붙여 시간을 `넘버링`하는 습성이 내겐 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이 현상세계를 `냄새`를 통해 의미화하려는 열망이 수반된 제목이다.”

- 시인이 되고자 마음먹었던 때는 언제인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처음 들은 수업이 `시론`이었다. 시라는 것이 대중가요 가사 같은 말랑말랑한 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수업을 통해 시가 상상력과 해석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임을 목격하고는 매료돼버렸다. 그 스무 살 때부터 시인을 꿈꾸었다.”

- 여행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행이 글을 쓰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익숙한 삶의 자리에 오래 머물다보면 정신도 둔해지고 감각도 퇴화되는데, 그때 낯선 이국이나 예측할 수 없는 자연으로 간다. 그러면 사소한 것에도 긴장하고, 두렵고, 놀라고, 감동하게 된다. 무뎌졌던 감각들이 벼려지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들이 태어난다. 그렇게 얻은 감각과 정신의 자극들이 내면에 새겨져 시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 사숙한 선배 시인이나 작가가 있는지.

“송재학, 장석주 시인을 동경했다. 송재학 시인의 경우 현란한 수사와 은유를 통해 성취한 미적 완결성을 마주하면 짓눌리는 듯하면서도 쾌감을 느낀다. `이미지의 가학성`이 좋았다. 장석주 시인은 학부 시절 은사다. 시를 쓰는 정신을 강조하셨고, 시집 `햇빛사냥`에 실린 초기 시편들을 통해 이미지나 발화법 등의 영향을 받았다.”

- “20~30대 한국 시인들은 가볍고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

“주도적 경향이나 담론이 없다는 데서 오히려 다양성이 움트는 것 같다. 이데올로기에서도 자유롭고, 동일한 범주로 묶일만한 일률적인 개성도 아니라는 것이다. 무겁지 않고, 전위라 할 만한 파격도 없지만, 서로 닮아있지도 않다. 이 `다양성`이 `가벼움`에 대한 변론인 동시에 `어려움`에 대한 옹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교류하는 동년배 작가는 누구인가?

“대학원을 같이 다닌 황종권 시인과 친하다. 매주 만나 함께 술을 마신다. 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울 때도 있고, 먹고사는 문제 등 당장의 현실과 앞날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기도 하고, 낚시, 여행, 운동 등 취미와 취향에 관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장가갈 때가 돼선지 이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웃음)”

- 당신이 주목하는 또래 작가는.

“`예술창작아카데미`에서 함께 활동한 황유원, 배수연, 정현우, 홍지호, 박세미, 최지인, 안태운 시인 등이다. 내가 쓸 수 없는 문장을 쓰고, 낼 수 없는 목소리를 내는 시인들이다. 황유원, 안태운 시인은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최지인 시인은 얼마 전 첫 시집을 냈다. 배수연, 박세미 시인도 곧 시집이 나올 예정이다. 정현우 시인의 유려한 이미지와 홍지호 시인의 담담한 진술은 흉내 내고 싶은 장기다.”

- 한국문단엔 `낚시`를 좋아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당신도 그렇다고 들었다. 낚시가 창작에도 도움을 주는가?

“낚시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감각을 기울이는 행위다. 거기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서 채비를 던지고, 가느다란 줄에 전해져오는 물의 흐름과 물속 지형을 느끼면서 상상하는 것이다. 감각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낚시는 창작과 비슷하다.”

- 평론가 박상수는 이번 시집에선 `불`과 `물`의 이미지가 동시에 보인다고 했는데.

“`불`은 내면에 각인된 최초의 폭력을 상징하는 이미지인데, 불 이미지가 사용된 시편들에서 불을 패배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오히려 극복하고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때 희열을 느끼는 태도들이 나타난다. 반면 `물`은 내 힘으로 닿지 못하는 곳에 나를 닿게 하는 이동과 전이의 방법론이다. 불과 달리 물에는 수동적으로 침잠되거나 유속성에 존재를 내맡기는데, 어린 시절부터 물을 좋아하고 편안하게 느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 `오늘의 냄새`<br /><br />이병철 지음·문학수첩 펴냄<br /><br />시집·8천원
▲ `오늘의 냄새` 이병철 지음·문학수첩 펴냄 시집·8천원

- 여러 작품에서 `가족`의 냄새가 맡아진다. 가족은 당신과 당신 시에 있어 어떤 의미인가?

“가족은 완전했던, 지금은 없는 유토피아다.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 시들이 유독 많은 것은 유토피아로의 회귀를 꿈꾸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꿈이지만. `가족해체시대`를 온몸으로 살면서 여섯이었던 대식구가 1인가구로 축소되는 걸 경험했다. 닿고 싶으나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자 미적 원형, 해체되고 분열된 실낙원이나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그래서 한없이 소중하고 아픈 세상이다.”

- 시집 `오늘의 냄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명하기 힘든 슬픔`과 `서늘한 뜨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동의하는가?

“기쁨, 슬픔, 분노, 사랑… 감정은 명명하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색 뿐 아니라 중간 색조가 있듯 슬픔과 기쁨의 중간, 사랑과 증오의 중간이 있고. 슬픈데 왜 슬픈지 알 수 없는 슬픔이 내겐 많다. 감각 또한 명확한 규정을 거부한다. 싫은데도 좋은 자극이 있다. 쾌감과 고통은 사실 한 몸이다. 그 모호한 지점, 경계가 불명확한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 첫 시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세계는 관념이 아니라 감각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 인간은 사유보다 감각이 먼저 작동하는 동물이라는 것, 판단하고 규정하고 의미화하는 것보다 감각적 인상에 집중할 때 세계의 아름다움과 더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21세기가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글쎄….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SNS를 활용한다든가 팟캐스트, 디카시, 시 콘서트 등 시대 경향에 맞는 나름의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고 있는 자체가 노력이라고 본다. 나는 어딘가 있을 단 한사람의 독자를 위해 끝까지 쓰겠다는 낡은 순정을 아직 지니고 있다.”

- 당신이 설계하고 있는 `문학적 미래`와 `인간적 미래`가 궁금하다.

“문학적으로는 금방 잊히거나 도태되지 않고 꾸준히 오래 쓰면서 늘 자기갱신을 시도하는 시인이고 싶다. 인간적으로는 제도나 기성의 관습에 물들지 않고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소년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구창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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