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찾아온다. 서로의 통제를 벗어나 그 스스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사랑은 있을지라도 해서는 안 될 사랑 따윈 없다.”(`몰락의 에티카`, 84면)
▲ 사랑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찾아온다. 서로의 통제를 벗어나 그 스스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사랑은 있을지라도 해서는 안 될 사랑 따윈 없다.”(`몰락의 에티카`, 84면)

△감각들

소설 두 편을 소개하려 한다. 하나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앤드루 포)의 표제작이고 또 하나는 `올리버 키터리지`(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는 소설집에 제일 처음에 실린 `약국`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여성인 헤더가, `약국`은 남성인 헨리가 서술자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들이 과거의 연인을 추억한다는 점에서 서사는 거의 동일하다.

이 두 편의 소설은, 나이 많은 남자와 그보다 많게는 서른 살 가량 어린 여자가 등장하며, 그들 사이에 흐르는 내밀하면서도 아주 미묘한 감정들, 그래서 `사랑`이라 말할 수도 없고, 그렇지 안다고도 말할 수도 없는 감정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에는 중산층이거나 그 이상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려 깊고, 자애롭고, 섬세한 감각을 가진 남성들. 아름답고, 풋풋하고, 역시 섬세한 감각을 지닌 여성들이다. 헤더와 헨리는 자신의 배우자(혹은 배우자가 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평생을 함께 하게 되리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헤더는 결혼하게 될 남자 친구 콜린이 있지만 물리학과 노교수인 로버트에게 끌린다. 헨리는 아름답고 열정적인 아내 올리버가 있지만 자신의 약국에서 일하는 이십 대의 데니즈에게 끌린다. 그들은 그들의 외도를 격정으로 몰아갈 수도 있지만 견뎌낸다.

여자 친구로서의 혹은 남편으로서의 의무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이들의 행동은 조심스럽다. 그런 것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조심스러움 속에서 암세포 같이 자라나는 감정과 그 통제될 수 없는 범위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랑은 결국 지나가 버리지만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남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두 편의 소설은 그런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잔잔하게 그리고 애잔하게 그런 잔물결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너울지는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소설 혹은 문학이라는 것들은 글자로 이루어져 있긴 하지만, 그 속에는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감각들이 존재한다. 어떤 소설은 격심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주 미약한 떨림만을 가진 것들도 있다. 이 소설들은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이러한 감각들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아니 느끼기 위해서는 온몸을 긴장시켜 몸의 솜털까지 세워야 한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은 아주 연약하고 미약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들은 쉽게 바스라지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는다면 이 소설들이 지닌 내밀한 감각들은 휙 지나쳐버리고 말 것이다.

△진실들

만약 소설이 진실을 보여주거나 혹은 교훈 같은 것을 전해주는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소설(가)의 사상 속에 있지도 그렇다고 소설의 주제나 중심 사건 속에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진실은 이런 것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에,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널려 있을 것이다.

나는 결혼도 안 했고 그러니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지만 “모자는 순식간에 격렬히 싸우다가도, 그 분노는 이내 무언의 친밀감처럼 둘을 감싸버려 영문을 알 길 없는 헨리만 멍하니 따돌림을 받는 기분이었다.”(`약국`, 13면)와 같은 서술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다. 격렬한 싸움이 무언의 친밀감으로 변해버리는 순간을 마치 나는 경험해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로버트와의 관계를 콜린에게 들킨 후의 헤더의 내면. “대신 나는 키스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주기를 바라면서 그저 그에게 키스를 하려 했고 그는 나의 키스를 피해버렸다.”(`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118면) 헤더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로버트와 친하게 지내는 것일 뿐, 사랑의 말을 속삭이거나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 다만 마음속으로만 로버트를 생각하고 있었노라고, 하지만 정말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은 로버트가 아닌 콜린 당신이라는 사실을, 비록 로버트를 사랑하지만,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콜린 당신이라는 사실을, 이 복잡한 심경을 헤더가 콜린에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헤더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진심을 담은 키스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데니즈가 자신의 남편(그의 이름도 헨리다)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려오는 장면이다.

“어느 토요일, 집에서 점심으로 치즈를 넣고 구운 게맛살 샌드위치를 먹을 때였다. 크리스토퍼가 샌드위치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는데 전화벨이 울려 올리브가 전화를 받으러 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크리스토퍼는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기다렸다. 헨리는 마음속으로 그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거실에서 올리브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아들이 직감적으로 예를 갖췄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불쌍한 것,” 전혀 그녀답지 않게 낙담했던 올리브의 그 목소리를 헨리는 그후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약국`, 36면)

흔히 정신분석학자들은 기억은 전유와 환유와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작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버릇없는 크리스토퍼가 직감적으로 죽음의 공기를 느끼고 예를 표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억은 데니지에 대한 헨리의 안타까움과 고통이 투영되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애도의 분위기에 맞게 기억이 재구성되어 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정신분석학자들이야말로 정말 정신병자라고 생각한다. 경이로움들, 환상들, 불가해한 것들, 이런 것들을 믿지 않으며, 어떻게든 인간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려는 그들이야말로 편집증 환자이거나 저열한 수준의 의사(학자)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토퍼와 같은 예민함이 어떤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로버트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콜린에게 들킨 헤더가 더 이상 로버트를 만날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해서 로버트의 아파트에 찾아온다. 헤더는 그런 말을 꺼내면서도 한편으로 로버트가 질투의 감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로버트는 그런 헤더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헤더는 화가 난다. 이 화의 감정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이 소설가는 “나는 그때 그가 너무나 쉽게 나를 이해해버리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122면)이라고 적고 있다. 적어도 모든 화가 그렇지 않겠지만, 너무 빨리 수긍하거나 너무 빨리 이해할 때, 화가 들끓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다. 작가 역시 이런 경우에 화가 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살아가도록 만든다. 이들은 실제로 피와 뼈와 살을 지닌 사람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소설 속에 살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에 순간으로만 존재한다. 소설이 삶이 아니라 소설이라면 어떻게 이런 진실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