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열<br /><br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겨울이 선다.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오묘함이 수다하지만, 그 가운데 계절이 바뀌면서 느끼는 변화와 그 오묘함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우리는 이제 겨울의 문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입춘과 입하, 그리고 입추는 대개 피부로 느끼는 계절을 한참 앞서 다가오더니, 입동은 올해도 실제 `겨울느낌`과 거의 동시에 찾아오는가 싶다. 우리는 겨울채비를 잘 하고 있는가.

시간과 계절이 어느 때를 시작과 끝이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 하루 스물네 시간과 일년 사계절도 사람이 만들어낸 단락이며 단위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고 자연이 흘러가는 저 모습에는 일정한 순서와 패턴이 있음이 분명히 보인다. 즉, 봄에 싹을 틔운 자연의 기운이 여름을 통하여 숙성하여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안겨준 다음 겨울을 맞아 스러지며 다가올 봄을 다시 기대하는 것이다. 이제 겨울을 지나며 웅크리고 침잠하는 가운데 새로운 다짐과 준비,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을 통하여 다시 피어오를 찬란한 봄을 상상할 것이다. 지난 시간 가졌을 겨룸과 다툼, 갈등과 고뇌의 응어리를 마음으로 다시 견주며 새 봄에는 어떠한 새로움으로 부활할 것인지 준비하는 것이다.

이 나라와 우리 지역은 겨울로 들어가며 마무리와 기다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나라는 지난 수개월 동안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은 셈이다. 아직도 발견되는 부끄러운 옛 모습을 따라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자신의 뒷모습과 그림자를 마주하고 있다. 겨울을 지나며 우리는 어둡고 처연한 그런 생김새를 참으로 신선하고 새로운 모양으로 다시 지어낼 다짐과 기대로 마주서야 하지 않을까. 부끄러운 지난 모습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노라는 `사회적 약속`을 확인하는 이 겨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새 봄이 되면 청년들과 다음 세대에게 이제는 당당하게 이 나라의 내일을 함께 그려가자고 말을 건네는 어른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역에는 아직도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문제들로 한가득이다. 겨울을 지나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 곳을 어떤 모습으로 물려줄 것인지 진정으로 마음을 모아 함께 고심하여야 한다. 새 봄이 되면 그래도 갈등과 등돌림으로부터 분명히 달라진 지역 공동체가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와 변화도 우연히 찾아오는 법은 절대로 없다. 이 공간에서 이 시간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 한 자락씩 거들며 생각을 모을 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새 모습이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나라에도 그러했듯이 지역의 내일을 상상하며 지혜를 모으는 `시민참여포럼`이 지역에도 한번쯤 시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겨울은 춥다. 무더위의 기억이 아직도 살갗에 남아있지만 이제 곧 살을 에이는 찬 바람과 눈보라도 닥칠 것이다. 휘몰아칠 한파와 폭설이 다가오기 전에 우리는 무엇인가 튼실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겨울 추위를 지나면서도, 우리는 긴장의 고삐를 풀 겨를이 없을 터이다. 쌓여온 문제들과 풀어야 할 매듭들을 마주 대하며 겨울을 지나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생각으로 이겨내는 혜안을 발휘하여야 한다. 입동(立冬)은, 어째서 入冬이라 적지 않았을까. 그저 그 곳에 있는 계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겨울을 세우고 일으켜 보겠다는 기개어린 다짐이 혹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다가올 겨울 동안에도 새롭게 세우고 다시 일으키는 다짐과 노력이 가득했으면 한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깃에 힘들어 지기 전에, 우리는 이 나라와 우리 지역이 저 건너 새 봄에 오히려 더욱 건강하게 `함께 사는 공동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다짐하며 준비하여야 한다. 나라든 지역이든 당신이 하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또 그래야 보람도 있고 자신감도 생길 것이 아닌가. 나라와 지역에는 그래서, 겨울이 없다. 뜨거운 열정과 꿈꾸는 기대가 가득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