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규, 영화 `범죄도시`서 열연
성공적인 첫 악역 연기 도전 `눈길`

▲ 영화 `범죄도시`에 출연한 배우 진선규가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직 꿈인지 생시인지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난 배우 진선규(40)는 영화 `범죄도시`가 600만명 돌파를 앞둔 소감을 묻자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니까 믿기지 않는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범죄도시`에서 흑룡파 조직의 보스 장첸(윤계상)의 오른팔인 위성락 역을 맡았다.

선한 눈빛과 사람 좋은 미소가 인상적인 그는 영화 속 모습과 180도 달랐다. 삭발한 머리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무자비하게 도끼를 휘두르는 위성락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 계속 선한 역할만 하다가 처음으로 악역 연기에 도전했어요. 연기하면서 `저도 이렇게 강한 사람의 눈빛을 가질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죠. 제 안의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범죄도시`는 제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자, 인생작입니다.”

그는 이번 작품에 오디션을 통해 뽑혔다.

“처음 오디션을 봤을 때 강윤성 감독님의 눈에는 제가 만족스럽지 못한 듯했어요. `다음에 다른 영화에서 보자`고 말씀하셨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다행히 한 번 더 기회를 주셔서 최선을 다해 오디션을 봤고, 최종 캐스팅됐을 때는 미친 듯이 기뻤습니다.”

그는 `범죄도시`에서 자신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윤계상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계상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을 많이 나눠줬어요. 영화의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그 덕분에 모든 배역이 살아날 수 있었죠.”

진선규는 대학로에서는 이미 소문난 연기파 배우다. 윤계상이 그를 연기 스승으로 꼽을 정도다. 2004년 아카펠라 연극 `겨울공주 평강이야기`를 시작으로 `더 마스크`(2006), `칠수와 만수`(2007), `김종욱 찾기`(2012), `리걸리 블론드`(2012) 등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누비며 입지를 다졌다.

안방극장에서도 2015년 방송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김명민)의 혁명동지 남은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영화에서는 `사냥`(2016)에서 중현역으로 처음으로 `이름`을 가진 배역을 맡으면서 충무로의 새 얼굴로 떠올랐다.

그가 올해 출연한 영화만 4편에 이른다. 지난 5월 개봉한 `특별시민`에서는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의 운전사 길수역을 맡아 최민식이 싸주는 대형 상추쌈을 우적우적 받아먹는 연기로 짧은 분량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불한당`에서는 부패한 교도계장역으로 나와 재호(설경구)의 따귀 세례를 받았고, `남한산성`에서는 충직한 장수 이두갑으로 출연, 억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매 작품 전혀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제가 연기를 잘해서라기보다 그 캐릭터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연기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연극을 할 때도 제 옆에 있던 관객이 `감동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정작 제가 누구인지는 못 알아보시더라고요. 배우로서 짜릿한 면은 있죠. 무대나 스크린 속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구나 하는 그런 느낌요.”

그래서인지 `범죄도시`가 흥행 대박을 터뜨렸지만, 아직 길거리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며 웃었다. “그래도 `범죄도시` 이전에는 어떤 배역의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다면, 이제는 시나리오를 주면서 `이 역할 해볼래?`라고 제의가 들어와요. 그것만 해도 저에게는 엄청난 변화죠.”

지난 14년간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지만, 학창시절 꿈은 체육 교사였다고 한다.

“제 말투가 조곤조곤하고, 실실 잘 웃다 보니까 `힘센` 급우들이 저를 괴롭혔어요. 그래서 이렇게 당하고만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체육관에 다니면서 태권도와 합기도, 절권도까지 닥치는 대로 운동을 했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것처럼 타이어를 묶어놓고 발차기도 했어요. 그렇게 운동을 하다 보니 재미가 붙었고, 소문이 날 정도로 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체육 교사를 꿈꿨죠.”

그런 그가 연기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은 고3 때다. 고향인 경남 진해의 작은 극단에 친구 따라 놀러 갔다가 삼삼오오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 뒤부터는 극단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고3 여름방학 때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강남의 대형 갈빗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연기학원에 다녔다. 비록 두 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된 식당 아르바이트와 연기학원을 병행하는 일은 19살 소년에게 벅찬 일이었다.

“진해로 돌아가기 전 남산 위에 올라가서 눈물을 삼키면서 결심했죠. 꼭 다시 서울에 와서 성공하겠다고….” 이후 진해에 있던 극단의 도움으로 3개월간의 짧은 연기수업을 받은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합격, 본격적인 연기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를 만들어 연극공연을 해왔다.

그렇다면 그는 남산에서 다짐했던 꿈을 이뤘을까.

“글쎄요. 저는 원래 연기를 잘 못 하는 배우였어요. 그러다 친한 친구의 도움으로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고, 10여 년이 지나면서 이제야 연극계에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알려졌죠. 영화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