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
▲ 배개화 단국대 교수

최근 언론에서는 `현대판 음서제`를 비판하는 기사나 칼럼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음서제도는 고려와 조선 시대,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나 지위가 높은 관리의 자손을 과거를 치르지 아니하고 관리로 채용하던 제도이다. 현대판 음서제는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의 자녀나 부유층의 자녀가 공공기관에 취직할 때 특혜를 받는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고위 공직자나 자녀의 특혜 채용이 대중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강원랜드의 채용비리였다. 최흥집 전 사장이 2011년 7월 취임 직후 500명 정도의 신입사원을 뽑으라고 지시했다. 이중 최 전 사장이 직접 청탁받아 채용을 지시한 사람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 267명이고 그 중 250여 명이 최종합격했다.

최근에는 우리은행의 채용비리가 논란이 되고 있다. 10월 17일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우리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신입사원 150명을 공채로 뽑으면서 그 중 16명을 금융감독원이나 국정원, 은행 주요 고객의 자녀와 친인척, 지인 등을 특혜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뿐만 아니라 수서고속철도 운영사(SR)도 자사와 모기업인 코레일의 임직원 자녀 12명을 뽑은 것으로 드러났다. 황홍주 의원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지역 농축협의 임원 자녀 채용 비리를 자체 감사에서 적발하고도 채용 취소나 직무범죄 고발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감사원, 중소기업진흥공단, 강원랜드, 한국석유공사, 한국석탄공사, 부산항만공사, 중소기업진흥공단, 서울교통공사, 한국항공우주산업(KAI), SR, 우리은행 등 정부기관과 공기업, 금융권 곳곳에서 의혹이 제기됐다.

이처럼 공기업 채용비리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27일 약 1천100개 공공기관의 최근 5년간 채용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채용 비리 연루자를 중징계하고 채용된 당사자는 퇴출시키고 5년 동안 공공기관 임용을 제한하겠다고 한다.

현재 문제가 된 공공기관들은 소위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직장들은 높은 연봉과 고용 안정성 , 그리고 휴가를 포함하는 복지 제도 등이 다른 곳보다 월등히 좋은 곳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 기업들은 한국 사회의 취업 문화를 이끌어나가는 `플래그쉽(flagship)` 직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공공기관에 취업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취업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민간기업과는 달리 공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비리가 적을 것이라고 지금까지 사람들은 믿어왔다. 공기업은 최종 면접과 같이 심사자의 주관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채용을 결정하는 데서 오너의 의사결정이 절대적인 민간 기업에 비해서는 공정한 심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어진다.

그런 곳에서 청탁에 의한 특혜 채용이 있다는 의혹과 논란은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는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이러한 실망은 직장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상징성 때문에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것은 신분세습의 문제를 넘어서는 걱정거리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각종 부분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의 엘리트들이 실력이 아닌 인맥과 배경에 의해서 선출된다는 점이다.

작년 겨울 계절학기 수업을 할 때, 필자는 1학년 평점이 낮아서 취업을 포기하고 창업으로 결정했다는 복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다른 고 학번 학생들도 1학년 평점이 4.0이 넘지 않으면 취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중 공공기관 취업을 생각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공공기업은 누군가에게는 좋은 학점과 스펙 관리로도 취업하기 힘든 높은 문턱이다. 하지만 이번 채용 비리 사건은 공공기관이 누구에게는 채용자 측의 세심하고 꼼꼼한 배려와 함께 쉽게 넘을 수 있는 낮은 문턱임을 보여준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괜히 필자가 억울해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