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득 편집부국장
▲ 김명득 편집부국장

“이건 국가를 상대로 한 사기죄에 해당됩니다.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어 이렇게 기자님을 찾아왔습니다.”

지난 9월 23일 밤 포항 북구 환여동 모 횟집에서 만난 제보자 A씨는 격분했다. 그는 자신도 주철뚜껑을 만들어 팔고 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A씨가 건네준 중국산 저가 오수받이 주철뚜껑 관련 제보 자료를 밤늦도록 보고 또 봐도 생소하기만 했다. 과연 이게 사실일까, 이렇게까지 속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만 더 커졌다.

포항지역 3곳에도 저가 중국산 오수받이 주철뚜껑이 설치돼 있다는 제보 자료의 내용을 직접 눈으로 현장을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었다. 다음날 오전 제보 자료에 나와 있는 3곳을 찾았다. 남구 대송면 지역은 중국산 주철뚜껑을 찾을 수 없었다. 곧바로 동해면 약전리로 향했다. 약전리 한 민가에서 제보자료에 실린 사진과 비슷한 주철뚜껑을 발견하고는 사진을 찍어 A씨에게 보냈다. “이게 중국산 주철뚜껑이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A씨의 답은 “아닙니다. 그건 우수받이 주철뚜껑입니다. 그 보다 더 작은 375mm 오수받이 주철뚜껑을 찍어 보내주세요….” 다시 민가를 뒤진 끝에 `오수받이`라고 쓰여진 주철뚜껑을 발견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이번엔 “예, 맞습니다. 틀림없는 중국산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구룡포 석병리 일대에도 이와 똑같은 주철뚜껑이 민가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포항시 하수과 담당 직원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자 주철뚜껑 구매는 감리단이 일괄로 맡아서 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감리단장과 통화를 해 본 결과, “생산 공장과 납품처에서 실사할 때만 국산제품인지 여부를 확인할 뿐 실제 현장에 투입된 제품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당국의 허술한 감시망을 피해 마지막 과정에서 이렇게 중국산이 국산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감리단의 생산공장 실사를 받을 때에는 국산제품을 표본으로 내놓았다가 확인을 거친 뒤 실제 공사현장에 납품할 때는 저가 중국산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관급공사 조달등록을 할 때 국산 오수받이 주철뚜껑의 경우 현재 조달등록 가격은 직경 375㎜ 기준 개당 5만5천원에 납품된다. 하지만 저가 중국산의 경우 개당 수입가격은 1만8천원에 불과하다. 저가 중국산이 국산으로 둔갑될 경우 개당 3만7천원의 폭리를 얻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불법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데도 해당 시·군은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등 관리감독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포항시도 뒤늦게 실태 파악에 나서 3곳의 주철뚜껑을 수거해 전문기관에 성분분석을 의뢰하는 뒷북을 치고 있다. 시는 이번 시험 결과가 적합으로 판정받게 될 경우 조달청 고시 공급가액의 차액만큼 관련 업체를 대상으로 조달청에 환수조치를 요청하고, 불합격 판정시에는 이미 시공된 주철뚜껑 전량을 수거, 교체한다고 한다.

문제는 폭리를 취한 돈이 업자 혼자의 배만 채웠는지, 아니면 또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갔는지 여부다. 검경은 이번 사례를 철저히 파헤쳐 규명해야 한다. 조달청도 이번 사례를 교훈삼아 관리를 더욱 세밀하게 해야 할 것이다. 엉뚱하게 빠지는 국민 혈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이런 불법사례들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도 많다. 이는 분명 국익에 위배되는 행위다.

“기자님, 저는 아직 명함을 드리지 못합니다. 나중에 이런 불법사례들이 사라진 후에 다시 찾아뵙고 정식으로 명함을 드리겠습니다.” 그가 누군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제보해 준 A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