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권선희
삼거리에 줄지어 선 벚나무는 아직 꿍꿍이 중이지만, 그래도 봄은 왔나보다.

먼 곳의 벗들은 한동안 묻지 않던 안부를 물어오고, 내 집 앞 두어 계단 논에서는 저녁마다 개구리들의 아직 덜 트인 목청 가다듬는 소리가 시작되었으니까.

얼마 전 대전에 사는 여류시인이 찾아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찾아 나선 봄의 길목에 내가 살고 있었다고 해야 옳겠다. 약속 장소인 북부해수욕장으로 가는 동안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들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가슴에서 내내 웅성웅성 거렸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월, 내가 몸담고 있는 ‘푸른시’동인과 대전의 ‘평상’동인의 만남이 동학사에서 있었는데, 그녀는 바닷내음 킁킁 나는 과메기 한 두름 들고 찾아 간 우리들을 밤새 정성껏 대접하였고 다음날 아침 환하게 배웅하였는데 유난히 고운 말씨와 화장기 없이 맑은 얼굴이 내 가슴에 콕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다음 날 서울 어느 행사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던 것이 인연의 전부인데, 반코트에 여전히 화장기 없는 뽀얀 맨얼굴로 궁금한 가방 하나를 든 그녀가 바닷가 도로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그녀를 태우고 내 마을 구룡포로 와서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포구를 잠시 보여주고는 슬그머니 어시장 귀퉁이 남수네 집으로 데려갔다. 경치 좋은 해안으로는 그럴듯한 횟집이 즐비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좀 더 특별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바닥은 온통 바닷물에 질척거리고 유리문도 없는 남수네 가게로 들어가 손바닥만한 상을 펴고 좁혀 앉아서는 남수 아빠가 수족관에서 떠올리는 생선들 퍼덕퍼덕 대는 소리 사이로 소주잔을 부딪쳤다.

다음 날 새벽, 나는 미리 약속된 산행을 떠났고, 서로 약속이나 한듯 전화는 걸지 않았으며 문자 편지 두어 개를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대전으로 돌아가 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신도여관’, '꿀꿀이 식당 모기 날다’라는 시 두 편이 적혀 있었는데 경상도 사투리로 고스란히 옮긴 아주 좋은 느낌의 시였다. 내가 퇴장한 시간부터 그녀는 신도 여관의 오래된 주인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른 아침 포구를 둘러보았으며 그 궁금한 가방을 들고 지난밤 남수네 집에서 물처럼 흘러가던 이야기 속을 다시 거슬러 다녔던 것이다. 모리국수를 찾아 꿀꿀이 식당으로 걸어 들었고 감척어선 앞에 다시 섰으며 그녀의 그러한 노력들은 몹시 샘이 나는 시 두 편으로 내게 온 것이다. 시를 읽는 순간, 처음에는 내가 4년이나 살아 온 구룡포의 가장 육질 좋은 제비추리 한 점을 쓰윽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곧 좋은 손님에게 가장 좋은 부위를 대접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는 몸담고 있는 출판사에서 펴낸 문학지와 노트를 담아 보내왔다. 시장을 돌다가 샀다는 호박엿과 표고버섯, 그리고 고운 엽서까지 동봉한 그날 이른 봄나들이에 대한 여운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온도를 먼 곳에서 온 그녀는 느꼈고 그것은 다시 내게로 왔으니 시인이라는 이름의 명찰을 가슴에 달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귀한 사람이라. 사람살이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그 거리를 지나치게 좁히며 살다보면 정작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여 그저 이 세상이 힘겹다고 푸념하다 돌아 갈 지도 모른다. 가끔은 좋은 벗 하나 두고 반가이 맞아 그의 눈을 통해 다시 세상을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힘을 얻으며 살아가야 할 일이다.

깊은 봄 지나 한 움큼 여름까지 보내고 난 가을 초입 쯤, 두서없는 전화 한 통 다시 받고 싶다.

그리고 약속장소로 순례씨의 나들이를 마중 나가 그녀의 궁금한 가방을 덥석 받아 다시 구룡포로 데려오고 싶다.

<권선희 시인 약력>

1965년 강원도 춘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포항문인협회, 포항예술문화연구소 회원, 푸른시 동인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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