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옳다``그르다`와 `같다``다르다`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옳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같다의 반대말인 다르다는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이것을 다른 것은 그른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특히 우리 정치판에서는 같은 당이 아닌 다른 당의 주장은 무조건 틀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본다. 그냥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다른 주장이라고 짚고 넘어가는 성숙한 정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일상이다. 최근 나온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은 이같은 우리 정치판의 타성을 크게 흔들어놨다. 신고리 5·6호기 공사재개 권고결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결정해야 할 국민적 관심사안을 공론화위원회에 논의하도록 맡겼고, 그 권고결정을 정부가 받아들이자 대의민주주의에 이은 `숙의민주주의`란 신조어로 등장했다. 대의민주주의는 수많은 사람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심한 국정현안에서는 대의민주주의가 무력한 양상을 보여왔다. 특정 지역에서는 국론분열의 양상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계층의 국민들을 모아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골고루 들려주고 그후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적 정당성의 모델을 선보인 것은 숙의민주주의 출현의 역사적 배경으로 충분했다. 일부에서는 집단 지성의 합리성에 의한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25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론화 과정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키고 사회적 갈등 현안 해결에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면서 “국가적 갈등과제를 소수의 전문가들이 결정하고 추진하기 보다는 시민들이 공론의 장에 직접 참여하고 여기서 도출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갈수록 빈발하는 대형 갈등과제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지혜가 절실하다”면서 “이번 공론화 경험을 통해 사회적 갈등 현안을 해결하는 다양한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이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공사중지로 1천억원에 가까운 혈세를 낭비했다는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시행된 공론화위원회 숙의과정은 음미해 볼만하다는 평가가 적지않다. 처음에는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정부 발표에 의구심을 표명하는 이들이 많았다. 탈원전정책 들러리로 공론화위원회를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결론적으로 공론화위원회가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럽다.

문제는 향후 탈원전정책은 어떻게 할 것이냐다. 탈원전정책은 국가의 백년대계에 해당하는 에너지 정책의 향방을 가르는 국책과제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외치며 원전건설을 중지하고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 나가겠다는 것 역시 하나의 정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선진국들이 여전히 원전건설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를 되짚어봐야 한다. 최근 만난 찰스 헤이 영국대사도 “유럽 각국은 저탄소정책에만 공조할 뿐 각국마다 다른 에너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면서도 “프랑스는 에너지 80%를 원전에서 충당하고 있으며, 원전 역사가 오랜 영국도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한계가 있어서 기본 에너지수급은 원전에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탈원전정책을 국가의 일관된 에너지 정책으로 채택하는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숙의민주주의` 모델로 제안한다. 국가의 대계를 좌우할 주요 정책을 추진하는데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 국회를 중심으로 `탈원전 공론화위원회`를 구성,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은 어떨까. 국회와 청와대의 생각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