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10년 넘게 애지중지하는 애마가 있다. 1994년 어느 밤에 죽도시장 주차장에서 처음 만난 순간, 단번에 마음에 들어 데려 왔는데, 밝은 아침에 보니 아주 잘 생기고 귀염을 많이 받은 놈이었다. 새차보다 더 인물이 났다. 인물 못지 않게 건강도 좋아서, 그동안 주인이 원하는 곳으로 탈 없이 무사고로 봉사해 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법인데, 이젠 이 녀석도 많이 변했다. 우선 몰골이 말이 아니다. 동네 아이들의 장난으로 쥐어 박히고 긁힌 상처가 아물지 않은데다, 요새는 심장마저 좋질 않다. 하기사 주인도 심장이 좋지 않으니, 오히려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주인이 아프면 희한하게 이 녀석도 아팠다. 그동안 몇 군데 손을 보긴 했지만, 아직도 같은 연배에선 빼어난 성능을 가진 녀석이다. 그렇긴 해도 아내는 연식이 너무 오래되어 언제 탈이 날지 모른다며 차를 바꾸라고 성화이다. 작년 말이었던가? 출근하려고 시동을 켜는데, 말을 듣질 않았다. 시간이 급해서 택시로 출근을 했다. 오후에 센터로 전화를 하여 진단을 받게 했다. 그런데 별 탈이 없단다. 날씨 탓도 있고, 차체가 오래되어 가끔 그럴 수도 있단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아내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인터넷을 뒤지고, 각종 정보, 소식지를 들고 와서 보챈다. 그래, 바꾸긴 해야 되는데,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드는 중고차가 없다. 중고시장에도 가고, 전화도 해서 어지간히 알아보는데도 신통치가 않다.

1988년 처음으로 신차를 구입했는데, 어찌나 좋던지, 시간만 나면 차 속에서 놀았다. 점심시간도 아까워 아예 도시락을 싸서 차 속에서 먹었다. 낮잠도 자고, 노래도 듣고. 자동차가 아니라 호텔이요, 식당이요, 다방이요, 놀이터였다. 비가 오면 우산을 씌우기도 하고, 허허. 밤에도 잠을 못 자고, 그 녀석을 생각했다. 아내가 신혼이었다면 아마 당장 갈라서자고 법정 투쟁이라도 했을 것이다. 너무 사랑이 지나치면 신들에게 미움을 산다고 했던가. 그만 집안 빚 청산하느라 2년만에 팔게 되었다. 헤어지기 전 날, 카 센터에 데리고 가서 종합검사를 한 뒤에, 손을 다 보고 넘겨주었다. 비록, 그 차를 산 사람과는 친구가 되어 여전히 만나고 다니지만, 그 녀석과 헤어진 뒤부터 지금까지 나는 중고차만 고집한다.

자동차 상사에 가면 새 주인을 기다리는 차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는 깔끔하게 보이는 녀석도 있고, 꾀죄죄한 녀석도 더러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연식이나 가격을 따지지만, 실은 전 주인을 만났으면 어떨까 싶다. 주인을 잘 만난 녀석은 애지중지 사랑을 받았을 테고, 그런 녀석이라면 믿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대부분의 자동차 상사에서는 흥정뿐이다. 녀석과의 새로운 만남을 위해 마지막으로 옹호하고 대변해 주는 살뜰한 주인이 없다. 이를테면, 잔병으로 병원에 몇 번 갔고, 건강 상태는 어떠하며, 오일을 얼마나 자주 교환하였고, 급제동시 어떤 증세를 보이며, 등등. 그래서 나는 자동차 상사에서 나의 애마를 선택하기가 싫은 것이다. 비록 말못할 이유로 주인은 바뀌지만, 녀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사랑은 인수인계 되어야 한다. 그런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녀석이 나타날 때까지 나는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기다릴 것이다. 위험한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제 목숨을 내 놓을 녀석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수필가 김종철 약력>

1955년 성주생

1996년 ‘문예한국’ 여름호

시집 ‘선생님도 혼자 있을 땐 운다’

현재 포항제철중학교 교사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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