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처음으로 신차를 구입했는데, 어찌나 좋던지, 시간만 나면 차 속에서 놀았다. 점심시간도 아까워 아예 도시락을 싸서 차 속에서 먹었다. 낮잠도 자고, 노래도 듣고. 자동차가 아니라 호텔이요, 식당이요, 다방이요, 놀이터였다. 비가 오면 우산을 씌우기도 하고, 허허. 밤에도 잠을 못 자고, 그 녀석을 생각했다. 아내가 신혼이었다면 아마 당장 갈라서자고 법정 투쟁이라도 했을 것이다. 너무 사랑이 지나치면 신들에게 미움을 산다고 했던가. 그만 집안 빚 청산하느라 2년만에 팔게 되었다. 헤어지기 전 날, 카 센터에 데리고 가서 종합검사를 한 뒤에, 손을 다 보고 넘겨주었다. 비록, 그 차를 산 사람과는 친구가 되어 여전히 만나고 다니지만, 그 녀석과 헤어진 뒤부터 지금까지 나는 중고차만 고집한다.
자동차 상사에 가면 새 주인을 기다리는 차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는 깔끔하게 보이는 녀석도 있고, 꾀죄죄한 녀석도 더러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연식이나 가격을 따지지만, 실은 전 주인을 만났으면 어떨까 싶다. 주인을 잘 만난 녀석은 애지중지 사랑을 받았을 테고, 그런 녀석이라면 믿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대부분의 자동차 상사에서는 흥정뿐이다. 녀석과의 새로운 만남을 위해 마지막으로 옹호하고 대변해 주는 살뜰한 주인이 없다. 이를테면, 잔병으로 병원에 몇 번 갔고, 건강 상태는 어떠하며, 오일을 얼마나 자주 교환하였고, 급제동시 어떤 증세를 보이며, 등등. 그래서 나는 자동차 상사에서 나의 애마를 선택하기가 싫은 것이다. 비록 말못할 이유로 주인은 바뀌지만, 녀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사랑은 인수인계 되어야 한다. 그런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녀석이 나타날 때까지 나는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기다릴 것이다. 위험한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제 목숨을 내 놓을 녀석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수필가 김종철 약력>
1955년 성주생
1996년 ‘문예한국’ 여름호
시집 ‘선생님도 혼자 있을 땐 운다’
현재 포항제철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