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우리 사회 정치적 지평에 최근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숙의민주주의.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의 재개여부를 놓고 공론화위원회가 설치되고 시민참여단이 구성되어 숙의를 거쳐 정책대안이 제안되고 이를 대통령이 수용한 일이다. 이를 두고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보다 진지한 토의가 가능하게 되어 우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하는가 하면, 이미 우리가 가진 대의민주주의 즉 국회의 존재와 역할이 희석되어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골간에 혼란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 생소하지만 매우 중요해 보이는 이 숙의민주주의에 대하여 생각을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것이다.

공론화 시민참여단이 회의를 하는 강당에는 연단 좌우에 `경청`과 `숙의`라는 커다란 현수막을 걸고 있었다. 경청(傾聽), 즉 다른 사람의 말과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 잘 듣겠다는 다짐이 걸려 있는 셈이고, 숙의(熟議)는 사안에 관련된 생각들을 무르익을 만큼 샅샅이 살피며 나누어 보겠다는 또 하나의 의지를 걸어놓은 것이다.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는 서구 민주사회에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개념으로 1980년대 정치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새로운 의사결정개념으로 다루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단순한 표 대결에 의존하기 보다는 진지한 토론을 통하여 이해와 존중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으로서, 대의민주주의의 틀 안에서도 당연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즉, 참여자들이 다루는 사안에 대하여 보다 진지하고 심도있는 토론을 벌여 이해와 합의의 저변을 넓혀 가려는 노력인 셈이다. 숙의민주주의 의사결정과정에서 표결 또한 있을 수 있지만, 상반되는 입장에 선 이들이 표결의 결과로서 가지게 되는 앙금과 갈등의 불씨를 최대한 줄여 보자는 의도도 엿보이는 것이다. 즉, 대립에 따르는 표결이 목표라기보다는 서로 간의 이해가 지향점인 셈이다.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시도된 이번의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의 토론회는 그 첫 시도로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정책결정에 있어 이 토론회가 가지는 정당성의 문제, 시민참여단이 과연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가의 질문과 그 구성의 문제, 의제선정과 결정과정의 타당성 확보의 과제, 그리고 국회로 대변되는 대의민주주의와의 상충 또는 조화의 문제 등 숙고해야 할 생각거리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동안 거의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에 있어 극심한 의견대립의 과정 끝에 표결로 의사결정을 마무리하는 기계적 과정만 보아왔던 보통 시민들은 상당히 신선하고 의미있는 정치적 현상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토론에 참여한 이들이 각자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고 진지한 토의과정을 거치게 되면 사안에 대한 실질적 이해 뿐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어 최종 결정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되든 갈등과 대립의 가능성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갈등과 대립의 불씨가 잦아들게 되면, 우리 사회의 조화와 화합에도 크게 도움이 되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사회발전 또한 가능해 질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과제들에 대하여 `숙의민주주의`의 사회적 토론 모델이 폭넓게 적용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이번 공론화과정에 참여하였던 모든 구성원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드리는 마음이며, 앞으로 참여하게 될 모든 이들도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잘 개진할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대변하여 그 자리에 임하였음을 명심하여 `민주주의`의 본래 취지에 충실할 수 있기를 기대하여 본다.

정치가 생물이라지만, 우리 사회도 살아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성숙과 진정한 발전을 위하여 시민의 관심과 참여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숙의민주주의는 그 방법의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