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철화 편집부국장
▲ 정철화 편집부국장

우리나라가 군부독재에서 민주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 중의 하나로 `갈등`을 꼽을 수 있다. 갈등의 어원은 칡(葛)과 등나무(藤)에서 유래했다. 사회 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칡과 등나무처럼 갈기갈기 얽혀 있다는 뜻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던 군부독재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이 우선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인 결과이다.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기주의에서 비롯되고 있다. 포항 남구 송도동과 북구 항구동을 잇는 포항 동빈대교 건설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국비 등 총사업비 662억원을 투입, 240m의 교량을 포함해 전장 1.35km의 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남북간 왕복도로가 2개뿐인 포항시가지의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숙원사업이지만 교량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초 서울의 부자마을인 강남구에서 한 장애학생 어머니가 주민들에게 특수학교를 설립하게 해달라고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강남주민들이 집값 하락과 주거환경훼손 등을 이유로 특수학교설립을 반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집단이기주의는 탈원전, 사드배치, 군공항이전 등 국가와 지역, 세대간, 계층간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병적으로 확산되어 있다. 집단이기주의를 무조건 탓할 일도 아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다수의 폭력일 수 있다. 재산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존중해줘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갈등 구조를 조정하고 합치된 의견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더 발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집단이성의 핵심인 지도자와 사회시스템 기능이 무너져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을 비롯한 국가와 지역의 지도자들은 허구한 날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서 싸움질만 하며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돼 있다. 조정자가 아니라 오히려 갈등 조장자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국가 전체에 암세포처럼 번져 있는 집단이기주의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 이러한 집단이기주의의 병폐를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제안하고 있는 공동체주의가 눈길을 끈다. 공동체주의는 개인이나 소속된 공동체의 이익이 지역사회나 국가 등 더 큰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이론이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동체를 둘러싼 더 넓은 공동체의 이익을 살필 수 있는 지성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공동체주의를 말하면 인근 일본의 국민성이 먼저 떠오른다. 일본 대지진 때 수많은 이재민이 학교 등지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방송됐다.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이고 각국에서 구호물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당시 상황을 미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다. 방송 인터뷰에 응한 이재민이 환하게 웃으며 “기관에서 구호물품을 나눠줄 때까지 참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또 현재 일본 사회의 최대 현안문제가 되고 있는 이지메(왕따)의 어원에서도 일본의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지메는 공동체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협조하지 않는 구성원에 대해 잔혹하게 배척한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사무라이 정신이 현재의 일본 국민성으로 깊숙이 스며 있다. 일본은 지금 이러한 국민성을 바탕으로 헌법 개정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의 국민성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국가체제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중앙집권적 강력한 통치체제를 구축해 가고 있다. 집단이기주의로 나라 전체가 갈기갈기 찢겨 있는 우리의 현재 사정과 대조적이다. 공익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 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