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는 오랜 진통 끝에 얻은 소중한 결실이다.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는 원전재개 59.5%, 반대 40.5%로 19% 포인트 차이가 남에 따라 원전재개 안을 정부에 권고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점진적인 원전 축소, 궁극적으로는 원전 폐기라는 권고도 포함되어 있다. 신고리 5·6호기의 재개 시에는 안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단서도 붙어 있다. 다음 주 정부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무회의를 거쳐 곧 원자력 건설 공사를 재개할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즉각 공론화위원회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야당은 원자력 발전소 폐기 문제로 혼란을 초래한 문재인 정부가 사과부터 해야 된다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간 원전을 반대해온 시민 단체에서는 아직 수용하기 힘들겠지만 이번에 원전의 심각한 폐해를 널리 알리고 궁극적으로는 원전 폐기 원칙을 권고했다는 점에서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원전 폐기`를 공약했지만 전력수급과 경제적 실리라는 측면에서 이를 수용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청와대가 미리 공론화위원회의 어떤 결정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정부의 체면만은 살린 셈이다.

이번 공론화 과정은 숙의(熟議)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숙의민주주의는 조셉 비세트가 1980년 그의 저술 제목으로 처음 사용하였다. 이것은 민주정치에서 정치적 쟁점에 구성원들의 갈등을 성숙한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유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설정한 개념이다. 어떤 쟁점에 시민의 대표들이 모여 숙의하여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다수결 원리를 통해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이다.

그러므로 숙의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병행할 수 있는 장치이다. 광장의 직접 민주주의는 다중에 의한 졸속한 결정이 이뤄질 위험이 크다. 소위 성난 민중에 의한 중우(衆愚)정치는 세계 정치사에서 종종 오점을 남겼다. 프랑스대혁명시의 파리의 성난 민심이 독재자 루이 16세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지만 다시 테레미도르의 반동은 결국 나폴레옹의 독재를 초래하였다. 4·19시의 성난 민심이 이승만 대통령을 추방했지만 다시 박정희 장군의 군사 쿠데타를 초래한 결과와 다를 바 없다. 광장민주주의에서 성난 민심을 적절히 수용하고 분별하는 장치가 없다면 그 비극은 반복된다. 광장의 집단 민심이 합리적 이성으로 승화되기는 어렵다. 여기에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으는 숙의과정은 광장민주주의의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간접민주주의인 대의민주주의 역시 이 나라 국회에서 보듯이 국민의 뜻과 너무 멀어진 경우가 허다하다. 대의 정치가 정파적 이익을 앞세운 파당 정치의 포로가 되어 자신을 선출한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고리 5·6호기 문제도 의회에 맡겼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국회는 원전 문제를 다시 정쟁으로 삼아 국론은 더욱 분열될 것이다. 아찔한 생각까지 든다. 국회는 식물국회, 파행국회의 연속이다 보니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471명의 숙의민주주의 대표들은 나라의 중대한 사안에 대한 중요한 결론을 도출하였다. 이들은`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의 맹점을 보완하였다.

그러나 숙의민주주의가 만능이 아니다. 주요 쟁점에 대한 하나의 정책 결정의 방식일 뿐이다. 모든 정책적 사안을 주민 대표의 숙의에만 맡길 수는 없다. 긴박한 사안, 예를 들면 사드 문제까지 숙의에 맡겼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겠는가. 숙의의 대상은 국민적인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걸린 갈등 사안에 한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시민 대표의 자격과 구성 문제도 좀 더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 과정을 더욱 확대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