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세상 이슈들 소재 삼아 글을 못 쓰겠다. 안 써진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엽기적 살인 행각, 연예인 최시원네 집 개에 물려 패혈증으로 사망한 한식당 `한일관` 대표의 안타까운 사연, MB 정부 국정원 정치공작 의혹 등 화젯거리가 많지만 이미 세간의 언어들로 충분히 소비되고 있어서인지 보탤 말이 없다. 사실 나는 나 이외의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고 생각이 단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나와는 무관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사회참여라는 말이 멋쩍고 어렵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할 일만 하자는 주의다. 장기기증 서약을 한 것이나 아동센터에서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동시 쓰기를 가르친 것 따위에 어떤 정의감이나 목적의식은 없었다. 타인에게 피해 입히지 않기, 공공질서 지키기, 나보다 약한 사람 돕기 같이 당연한 일이라 용기 내거나 희생을 감수한 것 아니다.

부끄럽다. 자신을 내던지면서 남을 돕고, 부당한 것들을 바로잡고, 더불어 삶을 실천하고, 결국 어떻게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감사하는 마음과 미안함을 항상 가지고 있다. 개인주의자와 나르시스트 사이를 오가며 살아온 나는 이 부끄러움과 부채감을 오래 간직해야 한다.

요즘 세상 이슈들에 관심을 안 가진 까닭은 내 이슈가 가장 `뜨거운 감자`여서다. 첫 시집을 발간하게 됐다. 나한테는 엄청난 사건이다. 남들이 열심히 경제활동해서 사회 생산성을 높일 동안,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사회참여에 힘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안 나는 이 시집 한 권 내려고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나 싶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별 도움은 안됐던 것 같다. 시를 쓴다는 자기낭만에 취해 술이나 마시고, 시상 떠올린다며 여행 가고 낚시 다녔다.

공고를 졸업하고 전문대에 들어가 처음 시를 배울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것과 만났다. 매일 빨간 줄이 그어진 종이를 붙잡고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행복했다. 대학 졸업 후 어느 여름날엔가는 안성 금광저수지변에 계신 은사께 시를 보여드리기 위해 주소도 모르면서 그 넓은 저수지를 한 바퀴 다 돌아 거의 탈진한 적도 있다. 은사께 칭찬 한마디 들으면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아직 오지 않은 생의 비극들마저 만만했다. 나름대로 이십대의 대부분 날들을 시 쓰기에 바쳤다. 시가 돈이 되지 않아도 행복했다. 오솔길의 임금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서른 살이 되자, 돈이 되지 않는 시를 계속 붙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멀리 달아났다. 하지만 달아날수록 시는 더 강하게 나를 잡아당겼다. 돌아선 뒤통수에 쏟아지는 시의 따가운 눈총이 미안하고 괴로워 몹시 취해버린 밤도 많았다. 돈 잘 벌어도 시를 안 쓰니 불안했고, 돈 한 푼 못 벌어도 시 한 편 쓰면 영혼이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렇게 `나`와 `내 시`에만 집중한 십여 년이 담긴, 어쩌면 이기적이고 지극히 세계관이 협소한 언어들로 지은 첫 시집을, 부끄럽고 빚진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시라도 잘 썼으면 다행인데 그것도 아니라서 더 창피하다. 존경하는 선배가 쓴 해설 원고를 읽다가 그만 울고 말았다. 가슴 벅찬 감격과 지난날들에 대한 회상, 어떤 후회들, 몇몇 떠오르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 민망함 같은 게 마구 뒤섞인 눈물이었다.

눈물은 각성으로 이어지는 법이라서, `나`라는 자의식을 다 쏟아낸 이 한 권의 시집 이후 나는 세상을 좀 더 멀리 보고, 둘러보고, 깊이 보기로 한다.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쓸 수 있는 시를 고민해보려 한다. 그래도 당분간만은 더 `나`만 생각하면 안 될까. 시집이 많이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대박`을 기원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