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황당하지만 믿고 싶은 `매혹적인 거짓말`인 음모론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음모론의 원조는 프리메이슨 조직이나 일루미나티같이 중세로부터 내려오는 비밀 조직들에서부터 비롯된다. 최근에는 에이즈 바이러스는 흑인, 동성애자, 마약 상용자를 청소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가 만들어냈다는 주장이나, 9·11 테러의 배후 세력은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 조직이 아니라 이스라엘 첩보부나 미국 정부라는 주장이 있었다. 또 미국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사건이 사실은 조작된 거짓말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퍼져 SNS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음모론은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속성에서 싹튼다. 쉽게 설명하기 힘든 현상에 대해 그 이유와 의미를 찾다보면 깨달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눈에 들어오고, `자기중심적 편파(Egocentric bias)`라든가 `인지적 불일치(Cognitive dissonance)` 등의 심리적 편향을 통해 점점 믿음이 강해진다. 한번 음모론의 씨앗이 싹트면 점점 더 많은 사건들이 동일한 의미로 재통합되며, 나름대로의 체계를 이루어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하며, 음모론은 마른 낙엽에 불붙듯이 순식간에 번져간다. 어느새 진실과 이성을 압도할 정도의 힘을 갖추게 된다. 결국 음모론에 매혹되는 것은 운명과 자연 속에서 길을 잃기 쉬운 인간의 취약함때문이다.

우리 국회나 법원, 청와대 주변에서도 음모론에 가까운 주장들이 부쩍 늘었다. 우선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동과 말을 보라. 법원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입장문을 읽다보면 대단한 음모(?)가 깔려있는 듯 싶다. 박 전 대통령은 입장문을 통해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면서도 “사사로운 인연을 위해서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다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과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심신의 고통을 인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사법부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박 전 대통령은 이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억울함과 결백을 주장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했던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인물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 전 대통령 구속연장 여부 결정 하루전에 세월호 관련 대통령 보고시점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발표해 정치적 논란을 빚었다. 임 실장은 이날 생방송 인터뷰에서“아침에 보고받자마자 발표하게 된 것은 관련사실의 중대성도 있고, 제가 관련사실이 발견되는 대로 시점은 정치적인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기록물은 이관하고 최소절차를 밟은 후 공개가 필요한 부분은 공개하겠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 해도 호사가들은 박근혜 정부로부터 아무런 서류도 넘겨받지 못했다는 문재인 정부가, 필요할 때 마다 문제가 될 만한 중요 문서들을 `시기적절하게` 발견해 발표하곤 하는 게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꼬집고 있다. 한마디로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한, 음모의 냄새가 짙단다. 특히 지난달 말 발견한 문서와 함께 세월호 보고시점 변경사실을 파악하는 데 열흘 이상 지체됐다는 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정치판에서는 상상, 그 이상의 일들도 쉽게 일어난다.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김원배 이사가 사의를 표명한 데 대해 “(이사를) 겁박해 쫓아내는 것은 민주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침해”라면서 “정권임기는 5년이고, 공소시효는 훨씬 길다. 나중에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라며 음모론의 한 자락을 드러냈다. 판사출신의 정치인이 그냥 봐 넘기기엔 음모론의 향기가 너무 짙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