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흥 식

치아 무너지듯 황폐하게

온 저녁을 무느는 것은

시영아파트

골목골목을 흔드는

두부꾼의 긴 목구지와

그도 가진 잘린 손

바람과 싸락눈이 야멸차다

거기, 차갑게

번들거리며 붉게 흐르는 창들

나는 그 강 후미서

이런 아득하던

그 여자를 추어내었다

소주도 한병 치를 떨었다

청춘이게 한다더니

눈물 산만하던

석양은 다 어디로 갔는가

세차게 싸락눈이 치는 도심에서 시인은 야멸차게 건너고자 했던 청춘의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별로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이 세월만 보내버린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며 회한에 잠기고 있다. 가슴 뜨겁게 품었던 꿈도 희망도 이제는 석양 속에 내려놓고 현실에 자족하며 남은 생을 건너가겠다는 편안한 마음 한 자락을 읽을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