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영덕기행
단풍 명소

▲ 주왕산에서 바라본 풍경. 기암괴석과 어울린 단풍이 인상적이다.

한가위를 지나며 계절이 바뀐다는 걸 알리는 비가 한두 차례 내리더니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서늘해졌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다녀야했던 여름이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나고,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 처연하다.

옥계팔봉 바위기둥 웅장한 팔각산
일곱가지의 보배가 숨겨진 칠보산
영덕~청송 `소통길` 탐방로 주왕산
바다·계곡·능선까지 가을낭만 가득

이 무렵이면 영덕은 도시의 색깔을 바꾼다. 짙푸른 바다 빛깔에서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아름다운 붉은빛으로.

새빨간 보석처럼 제 몸을 물들이는 팔각산과 칠보산, 주왕산의 나뭇잎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이상국(71) 시인의 `단풍`이다.

▲ 맑은 공기를 마시며 주왕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 맑은 공기를 마시며 주왕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잎잎이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봄에 겨우 만났는데
가을에 헤어져야 한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세상 어떤 것도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서러운 마음으로 `물감 같은 눈물`을 흘리는 나무. 그러나 계곡에 떨어진 `나무의 눈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슬프다기보다는 아름답다.

도시에선 맛보기 힘든 `달콤한 공기`를 마시며 산에 올라, 붉게 물든 가을 풍광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 이상의 `힐링(Healing)`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가을날 영덕은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단풍을 포함한 가을날의 풍경이 아름답기로 이름 높은 영덕의 팔각산과 칠보산, 주왕산을 독자들에 앞서 먼저 걸어보았다. 아울러, 매력적인 고택(古宅)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괴시(槐市)마을까지 둘러봤다.

▲ 팔각산 산성계곡이 떨어진 단풍잎으로 붉게 물들었다.
▲ 팔각산 산성계곡이 떨어진 단풍잎으로 붉게 물들었다.

◆ 팔각산, 동해에 비치는 아름다운 그림자

높이가 628m에 이르는 팔각산은 계곡을 끼고 8개의 바위기둥이 이어져 있다. 그런 이유로 `옥계팔봉(玉溪八峯)`이라고도 불린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경탄을 부르는 깎아지른 암벽이 있어 단풍철이 아닌 평소에도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한 팔각산엔 전국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70m)도 있다. 봉우리에선 단풍과 함께 삼사해상공원과 옥계계곡의 물줄기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쳐지는 옥계계곡은 팔각산이 간직한 보물 중 하나다. 침수정(枕漱亭)이 자리한 이 일대는 경상북도기념물 45호로 지정돼 있다. 계곡 가운데는 꽃봉오리 모양의 진주암(眞珠岩)이 있고, 주변의 병풍바위, 향로봉, 촛대바위 등이 여행자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옥계계곡은 옥(玉)처럼 맑은 물이 흐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마산 삼림욕장 옆을 스쳐가는 물길 위를 출렁다리로 건너면 또 다른 비경이 나타난다. 영덕 사람들은 이곳을 산성계곡이라 부른다. 바닥이 훤히 보일만큼 깨끗한 계곡물 위에 떠있는 노랗고 빨간 단풍잎은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 아름다운 단풍이 여행자를 유혹하는 영덕의 팔각산.
▲ 아름다운 단풍이 여행자를 유혹하는 영덕의 팔각산.

◆ 칠보산, 일곱 가지 보물을 찾아보는 즐거움

영덕군 병곡면에 위치한 칠보산(七寶山)은 태백산맥의 끝자락에서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일곱 가지 보배가 있는 산`이라는 명칭은 어떤 이유로 지어졌을까? 여기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전한다.

고려시대 영덕을 찾은 중국의 학자 한 명이 칠보산 계곡에서 목을 축이고는 물맛에 놀라 “분명 이 산에는 일곱 가지의 보물이 있을 것”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산을 다니며 확인해보니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구리, 철, 돌옷(바위에 난 이끼) 등 일곱 가지 귀한 것들이 있었다. `칠보산`은 그렇게 얻어진 이름이다.

울긋불긋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칠보산 정상에 오르면 발 아래로 고래불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칠보산 동쪽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유금사(有金寺)가 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는 보물 674호 유금사 삼층석탑을 돌며 소원을 빌어볼 수도 있다. 또,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선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을 위로한다.

산세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칠보산은 등산 초보자들에게 인기다. 산 아래엔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자연휴양림이 있어 사계절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칠보산이다.

▲ 전통을 간직한 고택과 만날 수 있는 영덕 괴시마을.
▲ 전통을 간직한 고택과 만날 수 있는 영덕 괴시마을.

◆ 주왕산과 괴시마을, 가을 여행객을 유혹하다

영덕군이 가을마다 여는 주왕산 탐방로의 인기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공개된 `용전리~갓바위~가메봉`의 6.2km 코스는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코스는 주왕산 아래 자리한 두 도시 영덕과 청송을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소통길`이라 불리기도 한다. 기묘한 형상의 갓바위와 왕거암은 산행에 재미를 더하고, 대궐령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가을 산의 정취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영덕군은 주왕산을 찾는 여행자들을 위해 5억 원을 들여 전망대, 안내판, 화장실 등을 설치했다. “주왕산을 연간 40만 명의 등산객이 찾는 명소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영덕은 진입로 확장 공사와 탐방객 편의시설 조성 등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대진해수욕장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또 하나의 보물과 만나게 된다. 바로 괴시마을. 이곳은 호지촌(濠池村)이라 불리다가 고려의 학자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이 영덕으로 오면서 지금의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함창 김씨, 수안 김씨, 영해 신씨 등이 어울려 살았고, 지금은 영양 남씨 집성촌이 됐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전통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괴시마을엔 영양 남씨 괴시파종택(槐市派宗宅·경북 민속자료 75호), 해촌고택(문화재자료 199호), 영은고택(문화재자료 459호) 등 오래 전 한국의 주거문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고택 30여 채가 모여 있다.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 팔각산과 칠보산의 단풍, 괴시마을의 고풍스런 기와가 영덕으로의 낭만여행을 권하고 있다.

▲ 장육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대웅전 등을 돌아보고 있다.
▲ 장육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대웅전 등을 돌아보고 있다.

산사에서의 하룻밤… 장육사 템플스테이

번잡한 세상 속에 섞여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끔 꿈꾼다. 조용한 산에 자리한 사찰에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잊고 풍경(風磬) 소리를 들으며 며칠쯤 푹 쉬고 싶다는 소박한 꿈.

직장인들의 이러한 꿈을 실현시켜주는 휴양의 한 형태가 템플스테이(Temple stay·절에서 숙박하며 사찰 생활을 체험하는 것)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삭막해질수록 `정적인 휴식`의 욕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영덕군 창수면의 장육사(裝陸寺)는 온갖 욕망이 때마다 충돌하는 세속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벗어나 몸과 마음의 생채기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장육사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마련해 사람들을 자연의 품으로 안내하고 있다.

고려 공민왕 재위 시기인 1355년 나옹왕사가 창건한 장육사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38호인 대웅전의 미려한 양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장육사 템플스테이는 불교문화의 원형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전통사찰에서 수행자의 일상과 삶을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관광객에게 제공한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장육사에는 주목할 만한 문화재도 적지 않다. 대웅전에는 보물 993호인 건칠관음보살좌상(乾漆觀音菩薩坐像)이 미소를 짓고 있다. 이 불상은 독특하게도 진흙으로 내부를 만들어, 삼베를 감은 틀 위에 종이를 여러 겹 붙이고 그 위에 금칠을 했다.

석가가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 후불탱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73호)와 지장보살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74호) 역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장육사 템플스테이는 당일 코스와 1박2일 혹은, 2박3일 코스 등으로 나눠져 있어 참여자의 여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공양과 예불을 진행하며, 참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는 것이 장육사 측의 설명이다.

차갑고 쓸쓸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10월. 템플스테이는 팍팍한 일상을 사는 현대인의 메마른 감수성과 비어가는 가슴을 따스하게 위로해줄 좋은 치료제의 하나일 듯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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