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최근 한 조사에서 등산을 제치고 국민 취미 생활 1위에 등극한, 자랑스러운 나의 취미 낚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낚시가 선생 노릇을 할 때가 있는데, 이십대의 마지막 겨울, 포항 양포방파제에서 그랬다.

결국 놓쳤지만, 어쨌든 내 생애 첫 볼락을 그때 만났다. 인조미끼를 사용하는 루어낚시에 심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서툴지만 열정만큼은 뜨거워서 강에서 꺽지 잡던 낚싯대를 챙겨 포항으로 달려갔다. 거기서는 감성돔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귀한 물고기, 산지에서 다 소비가 되어 서울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겨울바다의 진객 볼락을 꼭 잡아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대충 공부하고 현지 낚시점에 가 조언을 좀 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조행기들을 훑어보니 아이스박스 한 가득 볼락을 잡아낸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까짓 거 뭐 어렵지 않겠는데` 자신감이 마구 솟았다. 너무 많이 잡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눠줄 주변 사람들 얼굴부터 떠올렸다.

야광 지그헤드와 볼락용 웜, 싸구려 집어등 등 볼락 낚시에 필요한 장비들을 사서는 방파제에 올랐다. 테트라포드를 넘어 다니다가 좋아 보이는 자리에 서서 낚시를 시작했다. 겨울바다의 칼바람은 매섭고, 파도가 발밑을 때릴 때마다 움찔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금방 잡힐 것 같던 볼락은 좀처럼 루어를 물지 않았다. 한 발 더 앞에서 던지면 왠지 볼락이 잡힐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바닷물과 가장 가까운 테트라포드에 발을 디뎠다. 해조류와 이끼에 덮여 몹시 미끄러웠다.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오로지 볼락을 낚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위험을 무릅쓰는 미련한 짓이었다.

그렇게 해 저물녘, 마침내 한 마리를 잡아냈다. 생애 최초의 볼락이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리 들고 저리 들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손에서 놓쳤다. 그걸 다시 잡겠다고 급히 몸을 움직인 순간, 발이 미끄러져 차가운 겨울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하반신이 잠긴 채 두 팔로 테트라포드를 붙잡았다. 천만다행이었다. 황급히 기어 올라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겁에 질려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안전한 자리로 옮겼다. 허리 아래가 시멘트처럼 굳어지는 듯한 추위를 참아가며 서너 시간 더 낚시를 했던 것 같다. 물에 빠지고 나니 악에 받혀 오기가 생겼다. 그러나 결국 단 한 마리 볼락도 잡지 못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아슬아슬한 테트라포드에 서서 무리하게 낚시한 대가는 컸다. 비싼 방한복 바지가 찢어지고, 얼어붙어 통각을 못 느낀 무릎은 진작 까져 피 흘리고 있었다. 쓰고 있던 모자와 낚시 장비 몇 개를 잃어버렸다. 감기몸살은 덤으로 얻었다. 그때 깨달았다. 어디든 발 딛고 서 있는 자리가 탄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위태로운데 위태로운지 모르고, 겨우 버티고 서 있으면서 단단히 지탱하고 있는 줄 착각하던 시절에 한 사람을 만났다. 계속 흔들리며 중심도 못 잡으면서 아찔한 곡예처럼 하루하루 줄타기하던 날들, 만남의 기쁨에 취해 내 불안한 현실과, 서른 넘은 나이와, 열등감으로 금방 미끄러지는 우울을 눈치 채지 못했다.

발 디딘 자리가 불안하면 그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다. 나도 제대로 서 있지 못한 곳에 당신이라는 한 생애를 초대할 수 없다. 결국 그 사람은 늘 비틀거리고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떠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가 버렸다. 예정된 일이었다.

이제 나는 볼락을 제법 잘 잡는다. 절대 미끄러지지 않는 곳에 두 다리를 안전하게 고정하고 여유 있게 수십 마리씩 잡아내는 사람이 됐다. 그러나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흔들리는 중일까. 술에 취해 늦가을 바람 부는 거리를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지상의 거처 하나씩 분양해주고 싶다.